서울의 한 재개발 조합이 현금청산을 위해 마련해둔 공탁금을 법무법인 소속 직원이 횡령한 탓에 막바지 단계인 이전고시에서 조합원에게 토지 소유권을 내주지 못한 일이 뒤늦게 벌어졌다. 법원이 공탁금을 조합 법인계좌가 아니라 대리인이 제시한 계좌로 송금하는 ‘허점’을 악용한 사례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e편한세상신촌(1910가구·2017년 입주)의 재개발을 맡은 북아현 1-3구역 조합은 입주 2년 뒤인 2019년에야 이전고시를 마치고 조합 해산을 진행 중이다. 조합의 대리인으로 공탁금 관리를 맡은 법무법인 소속 직원이 A씨가 총 12억원의 공탁금을 횡령해 일정이 늦어졌다. A씨는 지난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조합은 사업지 내 토지를 조합원에게 배분하는 이전고시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조합 토지가 아니라 다른 소유자 명의 토지가 사업 부지에 남아있었다. 횡령 때문에 공탁금이 모자라 현금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토지가 드러난 것이다.
재개발 과정에선 조합이 분양받지 않은 토지 소유자에게 감정평가액만큼 보상한다. 소유자가 불복하면 조합이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하고, 토지수용위원회나 법원의 수용 재결(행정절차)을 거쳐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A씨는 감정평가액으로 공탁금을 청구했다가 재결로 증액되면 기존 감정평가액에 공탁금을 더한 금액을 과다 청구해 돈을 빼돌렸다. 명도 소송 때 맡겨둔 재판상 보증공탁금을 승소한 후 일부만 반환하는 수법을 쓰면서 횡령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공탁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조합은 재결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현금청산자가 수백 명에 달해 회계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다른 조합에서도 여러 차례 공탁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횡령을 시스템의 문제라고 봤다. 법원이 공탁금을 조합 계좌인지 확인하지 않고 대리인이 제시한 계좌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보상금 지급도 감정평가에 따른 지급부터 1·2차 불복 시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재결, 3·4차 불복 때는 행정소송 1·2심을 거쳐야 하는 등 청산자마다 제각각이어서 회계기록 확인 및 감사가 쉽지 않은 점이 문제다. 조합 관계자는 “회계 기록을 별도 보관하도록 하면서 감사 기준을 마련해 서울시나 관할 자치구가 조합 회계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