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최근 출간된 소설집 <각각의 계절>에 수록된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마지막 문장이다. 3년 만에 7번째 소설집으로 돌아온 권여선(58·사진) 작가는 한국경제신문·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처럼, 인생도 단계마다 각각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소설집으로 묶인 7편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공통점은 ‘기억과 불면’이다.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들”고, <사슴벌레식 문답>의 화자 ‘나(준희)’는 “사십 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고”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유와 증상은 달라도 대부분의 인물은 골똘한 사념에 사로잡혀 밤을 지새운다.
이들을 괴롭히는 건 과거의 후회다. 준희는 친구 무리의 관계가 갈라지는 상황에 번뇌한다. 모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이었다. 이랬던 그들은 정원이 20년 전 갑작스럽게 자살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경원이 부영을 배반하면서 틀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준희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오래전 네 사람이 떠난 여행 방 숙소에서 발견한 사슴벌레가 등장한다. 방충망이 닫혀 있는데 벌레가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에 주인은 이렇게 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친구들은 이를 ‘사슴벌레식 문답법’이라고 이름 붙인다.
“어떻게 들어왔어?” “어디로든 들어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달리 보면 의연한 문장이다. 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한 대학생들. 이들한테 사슴벌레의 답변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연극 배우를 꿈꾸던 정원이 ‘어떻게든 연극을 해’라고 다짐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준희는 문답의 무시무시한 뉘앙스를 발견했다.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강요가 숨어 있었던 것.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경원은 ‘친구 관계를 어떻게든 끊겠다, 어쩔래’라고 말하는 듯했다.
소설의 마지막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이 되기도 했다. ‘어디로든 들어온’ 사슴벌레는 사실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게 아닐까. 정원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죽음을 택했다. 그의 20주기 추모식에 홀로 참석한 준희는 친구들한테 안부 문자를 보내지만, ‘잘 살고,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는 매몰찬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사슴벌레식 문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권 작가는 “소설에서 나온 여러 해석 가운데 정답은 없다”며 “또 다른 해석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다. 이어 “문답에 대한 각각의 해석은 화자가 지나고 있는 계절, 즉 각각의 시절을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인생의 단계마다 문답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계절’에 살아가는 사람이 왜 ‘과거의 기억’을 들춰봐야 할까. 지난날의 과오를 곱씹은 뒤에야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작가는 “현재가 요구하는 힘을 내려면 과거에 가졌던 열정과 에너지가 왜 지금 유효하지 않은지 곰곰이 따져 물어야 한다”며 “그 물음을 통해 지금의 위치값을 알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자의 계절을 산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단절된 ‘나만의 계절’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들은 대화와 공감을 통해 유대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예컨대 <실버들 천만사>에서 반희는 ‘너무나도 달랐던’ 딸 채운과 여행을 떠난다. 엇갈렸던 모녀는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춰나간다.
“아직도 과거의 시절을 자꾸 돌이켜보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지금 저의 계절은 ‘기억의 계절’인 것 같아요. 제게 필요한 힘은 더 멀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과 그곳에 오래 머물러 반추하는 힘입니다.”
자신의 계절을 ‘기억’으로 정의한 권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말에 주목할 때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새로운 계절에 맞는 새로운 힘을 길어내시길 바랍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