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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사들인 미국 중소은행 퍼스트시티즌스 뱅크셰어스가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30배 넘는 순이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은행인 JP모건체이스 다음으로 양호한 수익성을 나타낸 은행에 등극하면서 SVB 인수가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은행들은 지역은행들의 줄파산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 사상 최고 수준의 이익을 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퍼스트시티즌스는 10일(현지시간) 지난 1~3월 순이익이 총 95억달러(약 12조5600억원)로, 1년 전 같은 기간(2억6400만달러) 대비 약 36배 늘었다고 발표했다. 주당순이익(EPS)은 653.64달러로, 전년 동월(16.7달러)보다 40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로써 퍼스트시티즌스는 같은 기간 126억달러(약 16조7000억원)의 이익을 낸 JP모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실적이 좋았던 은행이 됐다.
SVB 인수가 결정적이었다. 이 거래로 퍼스트시티즌스의 순이익은 98억달러만큼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SVB 인수를 빼놓고 보면 퍼스트시티즌스의 1분기 순이익은 3억6000만달러로, 1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장 전망치(2억9280만달러)는 웃도는 수준이다.
퍼스트시티즌스는 지난 3월 말 예금과 대출을 포함한 약 720억달러(약 95조원)어치의 SVB 자산을 165억달러에 인수했다. 900억달러(약 119조원)가량의 증권 등 다른 자산은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법정관리 대상으로 남았다.
SVB 인수를 계기로 퍼스트시티즌스의 자산은 종전 대비 2배 이상인 2000억달러로 커졌다. 자산 규모 기준 순위는 30위에서 20위까지 단숨에 뛰었다.
프랭크 홀딩 퍼스트시티즌스 최고경영자(CEO)는 SVB를 사들인 것이 “재정적 관점에선 ‘홈런’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퍼스트시티즌스 주가는 7.45% 급등 마감했다.
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위기가 미 금융권을 덮친 가운데서도 주요 은행들은 올 1분기 기록적인 실적을 냈다. 퍼스트시티즌스와 더불어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한 뉴욕커뮤니티뱅코프 자회사 플래그스타은행의 이익 규모가 일회적으로 급등한 영향이 컸다. 이에 더해 높은 금리 수준과 낮은 대출 연체율, 고용 지표 개선 등도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FT는 이날 올 1분기 미 금융업계가 800억달러(약 105조80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3% 증가했다. 뱅크레그데이터가 FDIC에 제출된 미 은행들의 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미 전역의 약 4400개 은행 중 5%에도 못 미치는 단 195만이 손실을 봤다.
독립적 은행 자문가인 버트 앨리는 “대부분의 산업이 실패하지 않고 있다. 경제는 여전히 꽤 좋은 상태”라고 짚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실적 랠리’는 지속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1분기 미 은행권이 떠안은 이자 비용이 850억달러(약 112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1년 전 대비 10배 급증한 규모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의 채무 불이행 규모도 2020년 이후 최고 수준인 120억달러로 급증해 우려를 더 하고 있다.
월렌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설립자인 크리스토퍼 월렌 은행 분석가는 “SVB 파산 이후 모든 금융 기관이 예금주를 대상으로 지급하는 이자 수준을 높였다”며 “은행들의 운영 비용은 훨씬 높은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며,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