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철 1호선 구로차량기지의 경기 광명시 이전이 추진 18년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광명시의 극렬 반대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에서다. 차량기지 이전이 원점 재검토 상황에 처하게 된 만큼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의 대체 기지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18년 이전 추진 끝에 백지화 결론
기획재정부는 9일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열고 구로차량기지 이전 재정사업에 대해 ‘타당성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구로차량기지 이전은 기존 서울 구로동의 코레일 차량기지(면적 25만3224㎡)를 광명시 노온사동(28만1931㎡)에 옮기는 사업이다. 국토부는 2005년부터 1조717억원을 들여 기지엔 철도 노선만 남기고, 광명까진 ‘차량기지선’을 놓는 동시에 대체 기지와 세 곳의 역사를 짓는 방안을 추진해왔다.이날 재정사업평가위원들은 경제성보다 정책성에 무게를 두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구로구와 광명시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 상황에서 이전 강행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 사업의 경제성 여부는 얘기하기 어려운 단계”라며 말을 아꼈다.
1974년 8월 수도권전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들어선 구로차량기지 부지는 당시엔 1호선 경인선과 경부선이 갈라지는 안양천 동편 유수지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구로공단 확장과 함께 기지 주변에 주택이 빽빽이 들어서면서 철도차량 수리 소음과 금속 분진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국토부 “당장 대체부지 마련 어려워”
차량기지 이전이 처음 추진된 건 2005년이다. 2006년 광명 이전 계획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광명시의 ‘지하화’ 요구에 무산됐다. 2012년 타당성 재조사, 2016년 재재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그때마다 광명시의 거센 반발에 발목이 잡혔다.2017년엔 서울시가 나서 이 지역의 도시계획을 수정(상업지구 비율 80%로 상향)하자 광명시는 기지 지하화, 5개 역 신설, 지선 운행간격 5분 등을 요구하며 ‘조건부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2020년께 광명시가 다시 반대로 돌아서면서 난항을 겪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구로구 유세에서 ‘기지 이전’을 약속하자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이후엔 구로구와 광명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기재부를 연이어 방문하고, 궐기대회가 열리는 등 지역 정치권 갈등으로 비화했다. 지난 8일 광명시민들은 세종 기재부 청사 앞에서 삭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광명시는 이날 기재부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이전을 기대했던 구로구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채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구 관계자는 “기지 이전은 주변 주거지역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추진돼야 할 사업”이라며 “국토부와 논의하며 후속 행동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계획된 사업이 무산된 것이라 당장 추후 대책을 말하긴 어렵다”며 “대체지역 마련, 기지개량 등 가능한 방안을 지자체와 논의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재정사업평가위는 김포 장기와 부천 종합운동장을 잇는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건설 사업 등을 예타 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 신설, 광주~나주 광역철도 사업도 예타 대상에 포함됐다. 충남 서산공항 건설사업은 타당성 부족 판정을 받아 구로차량기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산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김대훈 기자/세종=황정환·김소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