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작지만 분명한 성과를 인정받아 책임자로 승진한 K사업부장이 있었다. 그가 사업부를 맡은 지 6개월 뒤 평가회를 열었는데 재무 성과는 좋지 않았지만 인재경영에 대한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보직 발령 후 전 직원 1 대 1 면담을 했으며 “6개월 평가를 해보니 A팀장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어 강하게 피드백하고 경질했다”고도 했다. 그는 연말에 “문제가 있는 또 다른 팀장을 교체했고 이제 사업을 제대로 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이사회에서는 그에게 기대를 갖고 다음해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반년이 지나도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이번에는 뭔가 좀 이상해 보여서 인사책임자를 통해 현장과 직원들을 확인해봤다. 우려한 대로 문제는 그 사업부장에게 있었다. 그는 팀장들과 업무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거나 공유하지 않았고, 책임을 부하나 외부 환경에 돌리는 유형이었다. 이사회엔 원인을 찾았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보고했지만 문제가 그에게 있었기에 해결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1년 반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더구나 교체된 몇몇 팀장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없었다.
필자가 그룹 인사총괄 임원일 때 여러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하던 C팀장이 있었다. 그는 2년차 직원에게 PM(프로젝트매니저)을 맡기고, 보고도 직접 하게 했으며 본인은 늘 PD(프로젝트디렉터) 역할을 했다.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그는 늘 “아~ 그 부분은 제가 방향을 잘못 잡아줬습니다. 보완하겠습니다”는 식으로 일했다. 그가 나중에 PM이나 팀원에게 어떤 말을 한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그의 팀원 대부분이 5년 내 회사의 중요한 포스트에 조기 발탁됐다. 팀장이 우산이 돼주니 어린 직원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첫 번째 K사업부장처럼 실패하면 그를 심하게 책망하는 경우가 많다. 피드백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정당한 책임 규명 같지만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직접 발탁하고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경영자라면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의 역량과 강약점, 그리고 조직 상황을 분석해 내린 판단이기에 잘못은 결정권자에게 있다. 물론 그가 조직 정책에 반기를 들거나 윤리적 이슈로 실패했다면 그것을 책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대부분 경영자가 중간에 코칭이나 피드백을 하지 않은 결과다. 좋은 경영자는 발탁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하지 않아야 할지 물어보고 바른길로 가도록 적절한 도움을 준다.
중요한 것은 경영자 자신이 인재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교훈을 얻는 것이다. 그 누구도 주식 투자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돈을 탓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본인이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재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인재 결정에 대한 공과도 분명히 그를 임명한 사람에게 있다.
최악의 경우는 발탁한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사결정권자는 본인인데 엉뚱한 데 책임을 돌리기 때문이고 둘째가 더 치명적인데, 다른 팀원들에게 언젠가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갔을 때 동일한 비판이나 비난을 경영자가 할 것이라는 생각을 깊이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 밑에선 두려움으로 일할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충성하는 사람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회사는 충성심을 돈으로 살 수 없다. 충성심은 오직 획득될 수 있을 뿐이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숙고해야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한 말이나 “모든 책임은 나에게서 끝난다”고 한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 강력한 힘을 갖고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X세대, Y세대, 혹은 MZ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원이 기대하는 리더의 진실성(Integrity)과 신뢰, 곧 리더십의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경영자는 자원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 첫 번째 자원은 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