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100명 규모로 시작
8일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서울시에 따르면 양측은 건설업·농축산업 등의 비전문직 체류자를 대상으로 일시 취업을 허가하는 E-9 비자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근무 희망자를 모집해서 서울시 내 희망 가정에 연결해 줄 계획이다. E-9 비자 소지자는 정해진 사업장에서만 근로해야 한다. 1~2년 단기 근로 후 비자 갱신 방식으로 근로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시작 규모는 크지 않다. 100명 정도로 일단 꾸려서 시범 운영해 보고 문제가 없을 경우 인원을 늘려가려는 구상이다. 서울시는 입주형의 경우 각 가정마다 상주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의 규모나 여건이 제각각이어서 통제가 어려운 만큼 우선은 출퇴근 형식부터 시작해 볼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퇴근 후 사생활이 보장된다면 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는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출퇴근 교통비 일부를 지원해 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최저임금 미적용 논란 피해
앞서 조 의원의 발의안이 논란이 된 것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차별을 제도화한다는 역풍이 거셌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최저임금을 지키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으로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하면 월 170만원 정도다. 맞벌이 가정의 특성상 야간이나 주말근로가 일부 추가되고 각종 수당을 포함할 경우 실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월 200만원 선이 될 전망이다.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월 70만~100만원’ 도우미 제도와는 다르지만, 현재 시간당 1만~1만5000원 선에 형성돼 있는 출퇴근 베이비시터 시세에 비하면 최대 30% 가량 저렴하다. 중년 여성 중심의 현 시장 근로자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젊은 근로자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중국동포와 달리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고 문화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평균임금 웃도는 '이모님 월급'
조부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맞벌이 가정에서 육아 및 가사를 도와줄 이른바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고용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수요 대비 공급이 적어 이들의 임금도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다. ‘시터넷’ ‘단디헬퍼’ 등 도우미 구인구직 사이트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 두 명을 돌보기 위해 입주형으로 중국동포를 고용할 경우 월 200만원대 중·후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한국인을 고용하면 비용은 300만원대 초·중반으로 급등한다. 한국 여성의 평균 명목 임금(월 247만원, 고용노동부 2021년 통계)을 크게 웃돈다. 서울 및 경기 일부 지역을 벗어나면 ‘이모님’은 공급 자체가 급격히 감소한다. 세종에서 최근 육아휴직 후 복직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여성 공무원은 “서울은 중국동포 수가 많아 입주 도우미 구하는 것이 가능한데, 세종에는 아예 공급이 없다”며 “월 300만원대 중·후반 임금을 내걸어도 사람을 못 찾아서 고민”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여성 경력단절 문제를 완화하고 저출산 및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수혈’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지도 뚜렷하다. 양측이 서울에서 시범사업을 하게 된 배경이다. 오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일하면서도 육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간병인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
육아도우미 분야에서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확대되면 간병인 등 노동력 공급이 부족한 분야로도 비슷한 제도가 확산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종전에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방문취업 비자(H-2) 및 재외동포 비자(F-4) 비자 소지자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정부에 부담이다. 지난 3월말 기준 H-2 비자 소지 한국계 중국인 여성은 약 3만7000명(남성 5만2000명), F-4 비자 소지자는 17만2000명(남성 18만7000명) 정도다. 한국인들이 꺼리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맡는 경우가 많다. 고용부는 그동안 H-2 비자를 가지고 있는 중국동포의 인력 활용을 우선한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는데, E-9 가사근로자 도입은 이런 큰 기조를 바꾸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작년 12월말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외국인력 (고용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며 "E-9 자격을 가진 이들이 가사노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 추진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