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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빔]전기차 전쟁, 미국이든 중국이든 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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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국 현지 기준 맞춰 대응

 '고양이 색이 흰색이든 검은색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1970년대 중국 공산당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미국 방문 후 개혁개방을 외치며 던진 말이다. 이후 '흑묘백묘(黑猫白猫)'는 실용주의의 상징적 단어로 떠올랐고 중국은 모든 정책에 '흑묘백묘' 논리를 적용했다. 중국에 도움이 되면 그것이 적국이든 동맹국이든 가리지 않고 투자를 유치하며 공장을 수용했고 덕분에 세계 모든 나라에서 중국산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질 정도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은 부작용도 낳았다. 소득 및 산업 발전에 자신감을 얻으며 글로벌 패권을 표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 특히 전기차와 반도체 부문의 직접적인 진출 제한과 보호무역은 단숨에 두 나라에 많은 사업체를 거느린 한국의 고민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한국 기업에게 두 나라의 패권 경쟁은 어느 한쪽 시장의 포기를 강요받는 상황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영향 아래 미국에 진출하는 전기차는 최대한 배제하기로 했다. 소재, 부품, 완성차 모두를 규제하며 IRA를 시행한다. 미국에 기반을 둔 테슬라여도 중국산 전기차는 보조금에서 배제할 만큼 미국산 중심이다. 심지어 완성차와 배터리는 미국 생산을 우선하되 배터리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재도 중국산을 배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소재를 제한하면 미국도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여기서 국내 배터리 및 완성차기업은 돌파구를 찾는다. 미국도 지금은 전기차 생산을 위해 중국산 소재 사용을 일부 허용하지만 미국 주도의 공급망이 갖춰지면 중국산 제한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IRA 제도 하에서 중국산 소재 60% 사용을 점차 줄이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한국은 중국에 의존하는 수산화리튬 및 각종 가공 소재를 국내 생산으로 전환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손잡는 곳은 해당 기술을 보유한 중국 기업인데 미국의 IRA가 중국 기업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역효과를 발휘하는 형국이다. 

 완성차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은 최대한 앞당기되 바닥을 찍은 중국에선 현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로 재도약 시동을 걸고 있다. 미중이 서로의 안방을 지키기 위해 각종 장벽을 세울 때 한국 기업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방식으로 패권 경쟁의 틈새를 헤쳐나간다. 미국이 원하면 미국 기준에 맞추고, 중국이 제도를 만들면 중국에 맞춰 완성차를 진입시키는 게 최선책이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유럽 또한 자신들의 독무대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으로 탄소 국경세를 도입했지만 특정 국가는 배제하지 않는다. 전기차를 만들어 팔 때 필요한 부품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했다면 가격 경쟁만 떨어뜨릴 뿐이다. 그러자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의 유럽 직접 진출이 경쟁적으로 벌어진다. 일부 부품을 유럽에서 직접 만들면 유럽 내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생산이어서 탄소 국경세 적용도 받지 않는다. 물론 이런 사실은 글로벌 보급형 전기차 시장을 평정하려는 중국 기업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기업이 유럽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려는 목적도 중국 브랜드의 전기차 대량 보급에 맞추어져 있어서다.  

 따라서 유럽은 한국과 중국의 배터리 및 전기차 경쟁이 차별(?) 없이 펼쳐지는 격전의 장이다. 이미 진출한 중국 전기차 브랜드도 많고 확장세도 가파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리고 유럽 내 배터리 경쟁력을 위해 세계 최대 배터리기업 CATL도 적극 진출한다. 이때 한국과 차이점은 바로 규모다. 한국이 30~50GWh 규모를 얘기할 때 CATL은 100GWh를 짓는다. 국내 배터리기업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이 대형 슈퍼마켓을 마련할 때 중국은 대규모 할인점을 앞세워 가격 경쟁을 펼치려 한다. 이때 한국은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만회하려면 배터리 셀의 저온성 개선이 필수다. 게다가 유럽은 이미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는 나라도 많다. 여기서 중국보다 우위를 점하려면 기술 경쟁력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는 의미다. 

 최근 산업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해 적지 않은 세금을 투입한다고 한다. 중국이 장악한 LFP 배터리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에너지밀도가 높고 가격도 비싼 NCM 배터리가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내다봤던 국내 배터리 기업의 예측이 어긋났다는 뜻이다. 결국 배터리도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브랜드에, 다양한 차종에 판매하려면 다양한 소재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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