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디자이너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계기로 “전 세계에 한류가 불고 있는 지금이 ‘K명품’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목소리가 패션업계에서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명품 소비 1위(모건스탠리)에 오르는 등 세계적 럭셔리 시장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정작 세계 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브랜드는 우영미 등 일부에 불과하다.
○패션史 새로 쓴 우영미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영미 파리’, ‘솔리드 옴므’ 브랜드를 운영하는 패션기업 쏠리드의 지난해 매출은 998억6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8.1% 증가했다. 2018년 456억원이던 매출이 4년 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쏠리드의 이런 성적은 국내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선 압도적이다. 손정완 디자이너가 대표로 있는 패션기업 손정완이 지난해 315억원, 1세대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인터내셔널이 2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브랜드 ‘준지’(디자이너 정욱준)가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는 하지만,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내부적으로 적용하는 매출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매출이 100억원을 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쏠리드가 공시 기준으로 매출 1000억원에 도달한 건 국내 패션사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우 디자이너는 패션계에선 ‘마스터’(거장)로 불린다. 2002년 한국 패션이 해외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패션 본고장’ 파리에 진출해 끈질긴 집념으로 일가를 이뤘다.
그는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 패션위크에 공식 초청되는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은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100곳이 되지 않는다.
○‘K디자이너’ 각개약진
쏠리드 매출이 급증한 데엔 젊은 ‘패피’(패션피플)들이 신명품으로 분류되는 하이패션에 눈을 뜬 게 영향을 미쳤다. 해외에서 부는 ‘K열풍’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쏠리드 관계자는 “프랑스 명품 백화점인 르 봉 마르셰에서 우영미 브랜드가 남성관 매출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해외 유명 백화점이 입점 요청을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연령, 성별 간 패션 장벽이 무너지고 하이패션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우영미, 준지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브랜드 외에 신진 디자이너들도 해외에서 약진하고 있다.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은 2019년 런던 패션위크에서 사라 마이노 밀라노 패션위크 디자이너에게 낙점받아 2021년부터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단독 쇼를 열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월드 투어 콘서트를 위해 뮌 브랜드에서 직접 의상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며 더 유명해졌다. 디자이너 브랜드 전문 플랫폼인 하고엘앤에프에 입점한 ‘마뗑킴’은 지난해 연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활용해 2년 만에 매출을 10배로 키웠다.
○“산업 육성 나서야”
우호적인 환경에 힘입어 국내 디자이너들이 각개약진하고 있지만, 국내 하이패션 산업이 뿌리를 내리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패션업계의 시각이다. ‘제2의 우영미’를 탄생시키기 위해선 명품을 키워내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필수적이란 얘기다. 지경화 한국콘텐츠진흥원 한류지원본부장은 “패션을 부가가치가 높은 수출 전략 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국처럼 정부 주도의 패션교육 기관을 만들고 디자인 산업을 종합적으로 키울 수 있는 전문가 육성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