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인은 무엇일까. 과거에 비해 사건이 어렵고 복잡해진 탓도 있겠으나,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진 것도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과거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선발했을 때는 과도한 경쟁의 폐해가 지적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보상 체계가 없어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찾기 어려운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매년 법원장이 소속 법관에 대한 근무평정을 하지만 법관들은 과거와 달리 평정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근무평정을 잘 받아봐야 큰 의미가 없고, 잘못 받는다고 해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도 빛나지 않고 대충 해도 티가 나지 않으니 굳이 힘들게 많은 사건을 처리할 이유가 없고, 형사합의부 재판장 등의 힘든 보직은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재판 지연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현재 법관들 사이에서는 법조 경력 15년차 즈음에 선발되는 고법판사 정도가 경쟁 대상으로 인식되는데, 고법판사로 선발된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대법관으로 영전하는 것 외에 의미 있는 보상 체계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고법판사는 로펌의 주요 영입 대상이 돼서 작년에는 13명, 올해는 15명이 법원을 떠나는 등 사직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 ‘법원에서 쌓은 경력으로 로펌에서 보상을 받는 구조’라는 ‘웃픈 농담’마저 나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매년 일정 규모의 고법판사가 사직하기 때문에 그나마 신규 고법판사를 선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기존에 선발된 고법판사가 사직하지 않으면 젊은 법관들은 고법판사로 선발될 기회조차 없다. 그마저도 고법판사 보직에 관심 없는 법관들에게는 의미 있는 보상 체계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사에 '열심히 일할 동기' 부여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사직한 법관의 숫자가 344명, 전체 법관의 10%에 가깝다는 통계는 명백한 경고 신호다. 법관들이 대거 법원을 떠나는 ‘탈(脫)법원’ 러시는 남은 법관들이 격무에 시달리다가 법원을 떠나는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재판 지연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초조하게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법관이라면 신념과 정의감으로 항상 최선을 다해야지, 보상 체계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법관도 사람이고, 법원은 그 사람들이 속한 일터다. 어떤 조직이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경쟁이 사라진 조직은 점차 활력을 잃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각론은 어렵겠지만 총론은 간단하다. 법관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법원은 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므로 재판을 잘하는 법관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면 된다. 과거의 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평가 기준 등을 법원이 지향하는 목표에 맞도록 조정하면 될 일이지 보상 체계 자체를 약화시키거나 무력화할 필요는 없다. 조직이 주는 보상은 그것이 명예(승진)건 금전이건 조직의 구성원으로 하여금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평가 기준도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 보상은 단계별로 주어져야 하고 자족적이어야 할 것이다.
법원 내부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로 개혁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 때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게 지적되고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