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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도 반한 '텅 빈 골목길'…잊혀졌던 화가가 남긴 서울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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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진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애써 그린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없이 불태웠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작품들로 55세라는 늦은 나이에 서울 종로구 공간화랑(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명료한 붓질, 균형감 있는 구도, 독특하고 현대적인 색감…. 전시작들이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화가로서 자신감을 얻은 뒤 현대미술의 ‘메카’인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려고 했지만, 미국으로 떠난 지 20일 만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 고작 57세의 나이로 타계한 화가 원계홍(1923~1980·사진)의 얘기다.

원계홍은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였다. 짧은 인생 내내 그림만 그렸지만, 이른 죽음을 맞이한 탓에 이름을 알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몇몇 미술계 인사들이 국립현대미술관(1989년), 공간화랑(1990년) 등에서 유작전을 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런 원계홍의 작품이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던 종로구에서 33년 만에 되살아났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원계홍 회고전 ‘그 너머’를 통해서다. 일찍이 원계홍의 진가를 알아보고 작품을 수집해온 김태섭 전 서울장로회신학대학 학장,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과 성곡미술관이 원계홍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전시다.

반응은 뜨겁다. 잊혀진 화가라는 것이 무색하게 전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BTS의 리더 RM이 인스타그램에 원계홍의 그림을 올린 뒤엔 젊은 층도 전시장을 찾고 있다.

40년의 시간을 거슬러 관람객을 사로잡은 건 그의 ‘텅 빈 골목길’ 그림이다. ‘홍은동 유진상가 뒷골목’(1979), ‘수색역’(1979), ‘장충동 1가 뒷골목’(1980)…. 원계홍은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골목과 소박한 집, 간판, 문 등에 주목했다. 매일같이 새벽이면 의자, 캔버스, 물감을 챙겨서 골목길로 나가 그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작품엔 묘한 회색빛이 도드라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쓸쓸함은 1970년대 서울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당시 서울은 대대적인 재개발을 앞두고 있었다. 그 안에는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선 비자발적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계홍은 머지않아 사라질 서울의 뒷골목을 회색빛으로 담아낸 것이다.

원계홍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해 보인다는 것. 복잡한 묘사 없이 단순한 터치로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원계홍의 강점이 됐다. “간단한 아웃라인과 기하학적 요소만으로 완벽하게 구도를 잡았다”(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숙련에 때 묻지 않고 소박하며 원시적인 건강함이 빛난다”(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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