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컴퓨터 시험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법무부가 오는 7월까지 변호사시험을 CBT(Computer Based Test)로 치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엄명’을 내려서다. 100일가량 남은 현시점에도 공간,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CBT 체계를 갖춘 로스쿨은 25개 대학 중 3개에 그치고 있다. 일각에선 “수십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을 법무부가 무리하게 몰아붙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경제신문이 전국 25개 로스쿨을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 강원대 연세대 영남대 세 곳만 CBT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로스쿨 대부분이 아직도 CBT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법무부의 까다로운 규정을 맞추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전국 로스쿨에 입학 정원의 두 배가 넘는 인원이 CBT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시험장에는 가로 120㎝·세로 50㎝ 이상의 책상이 바닥에 붙은 상태로 있어야 하며, 이 책상에는 인터넷 랜선 등이 연결돼 있도록 했다. 각 좌석은 최소 1.5m씩 떨어져야 한다.
한 로스쿨 관계자는 “법무부 지침대로 시험장을 설계하면 멀쩡한 강의실 바닥을 뜯어내고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하는 등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일종의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각 대학 로스쿨과 협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험장 구축 예산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 법무부가 CBT 시스템 구축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주요 로스쿨은 이미 예산 집행계획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대학들은 계획에 없던 대규모 비용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에 따르면 전국 25개 대학 로스쿨이 CBT 시험장만 마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약 70억원으로 추산된다. 입학정원이 비교적 많은 서울대가 10억원, 경북대가 7억원, 고려대가 6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강원대는 지난해 12월 CBT 공간 구축작업을 시작했지만 추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한 대학 로스쿨 원장은 “미국 변호사시험은 20년 전부터 개인이 지참한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컴퓨터로 답안을 작성하는데 법무부가 추진하는 방식은 너무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했다.
시험 응시자가 시험장 좌석 수를 초과했을 때를 대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학이 준비한 CBT 좌석보다 응시자가 많으면 학생들은 주변에 여석이 있는 시험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로스쿨 대다수가 예산과 공간상 제약으로 법무부의 최소 기준(입학 정원의 두 배)의 턱걸이 수준에서 시험장 구축을 구상 중이다. 경북대 로스쿨은 입학 정원(120명)의 두 배를 조금 넘는 263석으로 CBT 공간을 마련할 방침이다.
응시자가 넘칠 것을 우려해 대규모 CBT 시험장을 구축하는 대학도 있다. 원광대는 입학 정원의 3배인 180석 이상의 CBT 시험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법무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시험장을 만들면 응시자가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원광대 관계자는 “매년 110여 명의 학생이 변호사 시험을 치른다”며 “법무부가 제시한 기준보다 여석을 충분하게 확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학생들이 소속 로스쿨에서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사 시험에 CBT가 도입되면 자대 로스쿨에서만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수도권에 몰려 시험장이 부족해지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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