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바뀌면 연락할게요."
지난 17일 오전 8시20분(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자리잡은 실체스터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실체스터는 지난 12일 ㈜LG 지분 5.0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투자회사다. 투자 배경에 대한 LG그룹 관계자들의 궁금증도 컸다.
기자는 지난 16일 실체스터에 "LG에 투자한 배경이 무엇이고, 배당 증액을 비롯한 주주제안에 나설 계획이냐"는 질문을 담은 이메일을 송부했다. 실체스터는 대답을 회피했지만 여지도 남겼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답장에서 "실체스터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LG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상황이 바뀌면 연락하겠다(We will be in touch if the situation changes)"고 덧붙였다. 글로벌 투자회사가 언론 문의에 하루 만에 답장을 보낸 건 이례적이다. '상황이 바뀐다면'이란 여지를 남긴 것도 주목된다.
실체스터는 1994년 출범한 자산운용사다. 투자 철학에 대해선 "장기 투자를 지향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동안 투자 기업에 주주제안을 할 때도 "단기 차익을 누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투자업체에 배당 증액을 요구하는 등 온건한 수준의 주주제안을 하면서 일본 언론은 '행동주의 투자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투자한 회사 이사회에 진입을 시도하거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한 사례는 눈에 띄지 않았다.
행동주의 투자자든 아니든 배당증액 등의 주주제안을 하려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언론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목적에서다. 그만큼 언론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공격한 헤지펀드 '엘리엇'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앨리엇은 국내 언론사를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도자료를 보냈다.
실체스터가 LG에 어떤 요구를 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 회사의 과거 행적을 고려하면 배당 증액 제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상장사들의 주주총회 시즌(매년 6월)을 한 달 앞둔 지난해 5월에도 이 회사는 일본 교토은행·시가은행·추고쿠은행에 "기본 배당에 추가로 특별배당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했다. 실체스터는 이들 은행에 "매출은 늘리고 비용을 줄이지 못해 아쉽다"며 "보유 주식을 통해 발생한 배당소득 전액 또는 은행 핵심사업으로 벌어들인 순이익의 50%를 배당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주주제안은 소액주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모두 부결됐다.
실체스터가 비슷한 요구를 LG에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LG는 상대적으로 높은 배당 성향을 갖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2022년 4745억원 규모 결산 배당을 실시했다. LG화학 LG전자를 포함한 자회사들로부터 받은 배당 수입(3920억원)을 넘어서는 금액이다. LG의 배당 총액은 지난해 별도기준 순이익(7374억원)의 53.1%에 달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