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보통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없는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인력과 자본에서 열세인 스타트업이 대기업이 진출했거나 진입할 시장을 피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특유의 뚝심으로 대기업과 '맞짱'을 마다하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해당 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살펴봤습니다.
글로벌 대기업과 '맞짱', 왓챠
최근 경쟁이 가장 격화한 국내 인터넷 콘텐츠 시장 중 하나가 OTT다. 넷플릭스가 시장을 압도하고 있지만 웨이브, 티빙 등 국내 업체들도 선전하고 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강자인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도 마블 등 다양한 인기 콘텐츠로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후발주자인 쿠팡플레이는 쿠팡 멤버십 가입자에게 무료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용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런 글로벌업체와 국내 대기업의 사이에서 OTT 스타트업 왓챠가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왓챠의 지난해 실적은 1년 전보다 악화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영업손실이 두 배 이상 증가하고 신규 투자할 현금성 자산도 크게 줄었다. 그동안 국내외 대기업 OTT업체의 사이에서 힘겹게 버틴 왓챠가 다시 살아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왓차의 지난해 매출(연결기준)은 733억원으로 1년전(708억원)보다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248억원에서 555억원으로 커졌다. 왓챠의 감사를 맡은 신한회계법인은 감사 의견으로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부채가 자산보다 과다하게 많아 지속 가능한 기업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 왓챠의 유동부채(기업의 부채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는 유동자산보다 323억원 더 많았다. 현금성 자산이 많 감소한 것도 부담이다. 보통 현금성 자산은 신규 투자, 인력 확대 등에 쓰인다. 왓챠의 현금성 자산은 2021년 말 281억원에서 지난해 말 42억원으로 감소했다.
왓챠의 실적 악화는 국내 OTT 시장의 ‘쩐의 전쟁’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OTT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기업들과 티빙(CJ), 웨이브(SK텔레콤) 등은 매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투입했다.
티빙과 웨이브도 출혈 경쟁으로 지난해 각각 1192억원과 1217억원이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왓챠도 시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콘텐츠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쟁업체 공세에 밀려 이용자 수(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기준)는 올 2월 71만명으로 2년 전(139만명)보다 절반 정도 줄었다.
최근 투자 유치 실패로 왓챠가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왓챠는 지난해 상반기에는 1000억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IPO)에 나섰다. 하지만 투자 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하반기에는 결국 회사 매각 카드까지 꺼냈다. LG유플러스, 웨이브, 리디 등이 인수 사업자로 거론됐지만 거래가 성사되지는 못했다.
왓챠는 효율적인 자금 집행으로 이번 위기를 넘기겠다는 계획이다. 왓챠는 자사의 콘텐츠 리뷰 서비스인 왓챠피디아가 보유한 국내외 최고 수준의 이용자 평점 데이터(6억5000만개 이상)를 올해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기몰이에 성공한 드라마 ‘시맨틱 에러’도 AI로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제작했다. 왓챠 관계자는 “다른 OTT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콘텐츠로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왓챠는 최신 극장 상영작의 유통도 최근 시작하는 등 매출 확대에도 나섰다. 시청자들이 특정 영화를 동시에 감상하는 캠페인인 '왓챠영화파티'로 영화 애호가를 노린 마케팅 활동도 시작했다. 왓챠영화파티는 영화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시청자가 채팅으로 소통하며 동시에 영화를 시청하는 이벤트다. 왓챠는 이용자 확대를 위해 광고 요금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광고를 보여주는 대신 이용료를 낮추는 요금제다. 넷플릭스도 지난해 월 5500원의 광고 요금제를 출시했다.
카모에 맞서는 타다와 아이엠택시
모빌리티 산업 중에서는 스타트업이 콜택시 사업에서 대기업과 경쟁 중이다. 그동안 국내 모바일 앱 기반 콜택시 시장을 키운 건 대기업으로 성장한 카카오였다. 중견기업 정도 수준이었던 카카오는 2015년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스타트업들은 콜택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카카오와 경쟁하려고 했다. 타다가 대표적이다.
타다는 2018년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시작했고, 1년 만에 회원 170만 명을 모았다. 기존 택시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고급 차량과 승객 맞춤 서비스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택시업계는 타다가 ‘위법 콜택시’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은 2020년 택시 면허를 다량 확보하거나 일정 기여금을 내는 업체만 모빌리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모빌리티 서비스를 갓 시작한 스타트업에는 버거운 조건이었다. 업계가 해당 법안을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으로 부른 이유다. 결국 타다는 관련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이후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 등 자금력이 있는 일부 기업만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타다는 2021년 비바리퍼블리카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고서야 모빌리티 사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다를 운영하는 브이씨엔씨의 지난해 성적표는 좋지 않다. 매출은 2021년 38억원에서 지난해 41억원으로 소폭 늘었다.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177억원에서 262억원으로 증가했다. 아이엠택시를 운영하는 진모빌리티의 경우에는 지난해 매출 217억원으로 1년 전(56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반면 영업손실은 138억원에서 136억원으로 소폭 줄이는 데 그쳤다. 두 기업 모두 지난해 마케팅 비용 증가 등 영업비용이 늘어난 영향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대기업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연결기준 매출 7915억원과 영업이익 195억원을 올렸다. 각각 1년 전보다 45%와 55% 증가했다. 2017년 카카오에서 분사하고 한동안 적자를 기록했던 카카오모빌리티는 2021년에 첫 흑자를 냈다.
SK스퀘어의 자회사인 티맵모빌리티와 우버의 합작회사인 우티는 지난해 회계상으로 마이너스 매출 128억원을 기록했다. 이례적인 수치다. 마케팅 비용 증가 등을 회계 기준에 반영한 결과다. 2021년 매출은 44억원이었다. 작년 당기순손실은 118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409억원)보다 손실 규모가 세 배 정도 커졌다.
브이씨엔씨와 진모빌리티는 1위 사업자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항하기 위해 최근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대형 택시에서 두 회사의 운영 차량을 합치면 카카오모빌리티(2000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메기' 토스
금융업에서는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인 핀테크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앞세워 가입자를 확대했다. 은행업, 증권 등 다른 금융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자 금융권은 반발했고, 금융당국도 각종 규제로 토스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면서 기존 금융권도 토스 서비스를 참고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토스는 국내 금융권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오프라인 영업점이 없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을 잇달아 내놨다. 토스뱅크는 지난해 600만명을 넘겼다. 기존 제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웠던 중저신용자의 대출 비중이 작년 말 기준 40.4%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을 보면 수익성이 좋지 않다. 비바리퍼블리카의 지난해 매출(연결기준)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1조1888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52% 늘었다. 반면 영업손실은 전년보다 38% 증가한 2472억원으로 집계됐다.
토스 매출액의 60% 정도를 차지한 결제대행(PG) 서비스였다. 이 부문을 맡고 있는 자회사 토스페이먼츠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5% 늘어난 7405억원이었다. 국내 PG업체 중에서는 3위였다. 다만 1~2위와 격차가 크게 줄었다. 지난해 매출 1위 사업자는 KG이니시스(1조1770억원)였다. 2위는 NHN한국사이버결제(8228억원). 다만 KG이니시스와 KG이니시스가 모두 지난해 4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토스페이먼츠의 영업손실은 687억원에 달했다. 토스페이먼츠는 비바리퍼블리카가 2020년 LG유플러스의 PG 부문을 인수하고 설립한 회사다.
토스 전체 매출에서 두 번째로 비중이 큰 계열사는 토스증권이다. 지난해 매출 1276억원, 영업손실 325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인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 실적(매출 19조1612억원, 영업이익 8459억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비바리퍼블리카가 36.84%의 지분을 보유중인 토스뱅크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손실은 각각 2449억원과 2449억원으로 집계됐다.
인터넷은행 업계의 1위 업체인 카카오뱅크의 지난해 매출은 1조6058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3532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토스는 은행, 증권, 간편결제 등에서 이용자 확보를 위해 마케팅비, 인력 확보 등 비용이 많이 들었다"라며 "앞으로 매출은 계속 늘겠지만 흑자 전환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