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황태린 NPR 매니저]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 지 모르겠어.” 라는 고민을 종종 듣곤 한다. 걱정의 화자는 나이로 치면 중년, 직급으로 치면 상위 관리자로 직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지속 가능한 업무의 필수 요건으로 이어지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 자신들이 신입사원이던 시절 겪었던 소통의 부재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탐구 정신을 기반으로 소통하고 싶어하는 사람, 우선은 어렵다는 말을 던진 다음 사원들이 맞춰 주길 바라는 사람. ‘까라면 까’라는 식의 업무를 추구하는 사람도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은 있겠으나, 그것이 변화를 위한 고민인지는 다른 주제라고 생각한다.
업무 상황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중년들은 Z세대가 다른 인류인 것처럼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그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할 때가 있다. 요즘 뉴진스를 모르면 늙은이, 라는 식의 평가를 스스로 만들면서 말이다. 정작 Z세대 당사자인 나와 열심히 대화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마음 한 켠에는 ‘이 사람이 나를 맞춰주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상사는 어떻게 해야 젊은 사원과 ‘또래처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방법은 없다. 노력으로도 어렵다. 우리에게도 상사는 존재만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다. 아무리 미디어 속 Z세대들이 조직의 개념이 없고 ‘안하무인’일지라도 현실의 우리들은 내 서툰 발화가 오해를 부르진 않을지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건 서로의 자리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 ‘신이 내린 꿀팔자’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처럼 모든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아래로 편하게 흘러가는 상선약수의 자세를 취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누군가는 그가 직급에 얽매이지 않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감독의 권위가 크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자리를 찾는 일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팀장과 신입사원을 두고 그들이 가진 것 비교해보자.
팀장이 가진 것: 업무 스트레스, 직급, 권위, 인맥, (때에 따라) 업무 노하우와 융통성, 다수의 신입을 본 경험, 자신이 신입이었던 기억, 성과에 대한 임원진의 압박, 약해진 위장 등등
신입사원이 가진 것: (때에 따라) 건강, 조금 몰라도 괜찮다는 패널티, 긴장, 업무 스트레스, 순수함, 열정, 애사심, 뭐든지 OK하는 도전정신 등등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 외에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을 가졌다. 가진 게 다르면 바라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이들이 또래처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신입사원들에게 존경 받고 잘 소통하는 중년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뭐가 달라서 ‘신인류’와 유사한 신입사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상사라는 직급은 소통에 있어 약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권위 의식 내려놓기, 같은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의 방식은 아니다. 이때 내려놓아야 할 것도 고집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다 겪어봐서 아는데’ 식의 고집을 우리는 권위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통하고 싶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정, 애정, 냉정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인정은 ‘꼰대’에서 벗어나는 첫 스텝이면서 스스로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인정에 동반되는 것은 내가 십몇 년 동안 알아온 ‘사실’을 고칠 수 있는 유연성, 바뀐 생각을 주변에 설명할 수 있는 용기 등이다.
애정은 업무, 소속 분야에 대한 애정을 의미한다. 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타인에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어휘력 및 참을성도 포함된다. 새로운 사람을 길러내는 것도 업계 유지를 위한 애정의 한 축으로 바라보면 맥락을 이해하는 게 조금 더 쉬울 것이다. 물론 이해도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올바른 ‘조언’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은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선을 지키는 냉정이다. 피드백에 감정을 섞지 않고 공과 사를 구분하며, 이를 상대방도 인지하게끔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다 알고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피드백은 답답함의 토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말을 차갑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감정과 일의 과정을 분리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틀릴 수 있다는 인정, 분야에 대한 애정, 피드백 시 필요한 냉정. 세 가지를 우선 갖춘 상사를 우리는 믿고 대화하고 싶다. 막연히 유행을 따르고 사적인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입 장벽은 낮되 그가 가진 능력은 무거운 버팀목 같은 상사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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