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 직장인 수백 명이 출근하기 위해 지나가는 보행도로를 한 ‘불법 천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도로가에는 ‘서초구청·서초경찰서는 대기업 똥개 노릇 그만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 수십 개가 걸려 있었다. 천막 옆 초대형 스피커에선 운동권 가요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귀를 막고 비좁은 길을 어렵게 지나갔다. 이곳에서 10년째 불법 천막 등을 치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 탓이다.
일부 시위자가 기업 본사 주위에서 불법 천막과 명예훼손 현수막 등을 앞세워 막무가내 농성을 벌이면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보행자, 인근 주민까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명백한 위법 행위에 대해선 단호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과거 일했던 기아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갈등, 판매 부진 등으로 용역계약이 해지됐다. A씨는 그러나 고용 관계가 전혀 없는 기아에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10년째 농성 중이다. 기아는 A씨를 상대로 과대 소음 및 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형사소송 1심 재판부도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A씨는 그러나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서초동 하이트진로 빌딩 앞에서도 10년 넘게 확성기와 현수막, 트럭을 이용한 불법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하이트진로로부터 부당영업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생수업체 대표 B씨다. 그는 빌딩 앞에 1.5t 트럭을 주차하고, 확성기로 하이트진로를 비난하며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곳곳에 설치했다. B씨 역시 하이트진로가 제기한 형사소송에서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받았지만 위법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 청진동 KT 사옥 앞에서 수년째 시위 중인 C씨는 2010년 해고됐다. 그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10여 차례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그럼에도 C씨 역시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설치한 천막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초구가 A씨의 천막을 철거하자 그는 구청 1층 로비를 무단 점거하고, 고성을 지르며 구청을 상대로 시위를 벌였다. A씨는 다시 천막을 설치했으며, 서초구는 강제 철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거액의 빚을 지고 폐업한 전 대리점주 D씨는 KT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농성 중인 D씨에겐 행정력도 속수무책이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권리지만, 불법적인 방식으로 기업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괴롭히는 데 대해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행정당국은 불법 시위자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말고, 법 집행자로서 공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