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업 대표가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받는 결과가 나오자 산업계의 긴장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법정 구속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첫 재판 결과를 두고 대표가 언제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계열사 사고로 그룹 총수가 기소되는 일까지 생기면서 사고 한 건이 그룹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EO 재판’ 줄줄이 대기
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온유파트너스를 포함해 삼표산업, 한국제강, 삼강에스앤씨, 두성산업 등 14개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모두 대표나 그룹 총수가 경영책임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계에선 이날 온유파트너스 대표가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으면서 재판에서 검찰 측의 유죄 논리를 깨지 못하면 적어도 집행유예를 피하기 어렵다는 선례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검찰은 최장 징역 30년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였다.
이번 판결은 하청 근로자의 사망으로 원청 대표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면, 하청 근로자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원청 측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온유파트너스를 포함해 하청 근로자의 사망으로 기소된 기업은 10곳에 달한다.
○계열사 사고를 그룹 총수가 책임지나
지난달 31일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계열사인 삼표산업의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그룹 총수도 계열사 사고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검찰은 작년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채석장에서 무너진 토사 약 30만㎥에 삼표산업 근로자 세 명이 매몰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정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삼표산업의 경영책임자로 지목했다. 정 회장이 30년간 채석산업에 종사한 전문가로 사고 현장의 야적장 설치, 채석작업 방식을 최종 결정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기업들은 삼표산업 안전보건책임자(CSO)와 대표를 건너뛰고 정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것을 두고 “CSO가 있어도 소용없다는 것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SK지오센트릭, 현대제철, 여천NCC, 쌍용C&E 등 적잖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중대재해 관련 조사를 받고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번 사례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룹 회장도 경영책임자로 해석돼 처벌받을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앞으로 기업들이 재판에서 더 공격적으로 법리 싸움을 준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려면 크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 미이행 △사고와의 인과관계 △예견 가능성 △고의성 등이 동시에 입증돼야 한다. 기업이 법에서 요구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고, 사고가 날 가능성이 예견됐음에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업과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항소해 위법 여부를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고 예방에 쓰여야 할 돈이 법정 공방에 투입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진성/곽용희/민경진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