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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한국 산불은 人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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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4일 밤 11시50분쯤 강원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영동지방에는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태. 불은 순간 최대 풍속 32m의 강한 바람을 타고 시속 5㎞ 속도로 동진했다. 다음날 오전 동해안에 이른 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를 집어삼켰다. 보물인 낙산사 동종마저 녹여버릴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양간지풍(襄杆之風),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의 단순림이 피해를 키웠다. 불이 붙은 나뭇가지나 솔방울이 불기둥과 함께 상승한 다음 강풍을 타고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 일명 ‘도깨비불’의 위력도 가공할 만했다. 불씨를 품은 솔방울은 강풍을 타고 최대 2㎞까지 날아갔다.

산불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양양·낙산사 산불은 973㏊의 산림을 태웠고 재산 피해도 394억원에 달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3~2022년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은 평균 537건, 피해 면적은 3560㏊에 달한다. 올해만 380건의 산불로 830㏊의 숲이 잿더미로 변했다.

문제는 산불의 대부분이 인재라는 사실이다. 입산자 실화(34%), 논·밭두렁 소각(14%), 쓰레기 소각(13%), 성묘객 실화(3%), 어린이 불장난(1%), 건축물 화재(5%) 등이다. 원인 미상으로 분류된 기타가 25%인데 이 중 상당수는 인재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낙뢰 등으로 인한 자연 발화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자연 발화로 인한 산불은 연평균 한두 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휴일인 지난 2일에만 충남 홍성과 당진, 대전, 경북 군위 등 전국 곳곳에서 3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서울 인왕산에서도 축구장 20여 개 넓이의 숲이 사라졌다. 소방당국이 진화에 나섰지만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 일부 산불은 밤을 지나 3일까지 이어졌고, 새로 발생한 산불까지 겹쳐 비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10년 통계를 보면 산불의 절반 이상(58%)이 봄에 일어난다. 그중 대부분이 인재다. 이 봄을 잘 넘겨야 숲이 산다.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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