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출산율을 반등시키겠다고 강조한 건 저출산 문제 해결 없이는 국가의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세계 최저였다. 출산율이 0.8명대를 뚫고 내려간 것도 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출생아 수도 한 해 24만 명으로, 30년 전인 1991년(71만 명)의 3분의 1로 줄었다. 윤 대통령은 “저출산 문제는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라며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정을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극저출산 국가’ 된 한국
정부는 한국이 ‘극저출산 국가’가 된 건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진 데다 결혼한 부부들조차 출산·양육을 꺼릴 만큼 사회경제적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18년 이후 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배경에는 일과 육아의 병행이 어려운 직장 환경과 경제적 부담, 주택 가격 상승 등에 따른 미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정부는 기존 저출산 대책의 한계로 ‘백화점식 과제 나열’을 꼽으며 한 해 50조원이 넘는 저출산 예산을 △돌봄·육아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건강 등 5대 핵심 분야에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우선 부모가 원하는 만큼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보육 인프라를 확대하기로 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 1년씩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인 아이돌봄 서비스 규모를 지난해 7만8000가구에서 2027년까지 연 24만 가구 수준으로 3배가량으로 늘리고, 0세반을 만드는 어린이집에 인센티브를 확대하기로 했다. 초등학생 돌봄교실 운영시간도 현재 오후 7시에서 8시로 1시간 연장한다.
부모가 일하면서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근로 환경도 개선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확대해 초등학교 6학년(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가 각각 최장 3년까지 단축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맞벌이 부부는 최장 6년간 단축근로 제도를 쓸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초등학교 2학년(만 8세) 자녀를 둔 부모가 각각 최장 2년까지만 단축근로를 할 수 있다.
육아기 재택근무를 위한 지원 방안과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민간 기업에선 현실적으로 쓰기 어려운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늘릴 방침이다.
양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 혜택도 강화한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부부 합산 소득 4000만원 미만 가구에 연 80만원을 지급하는 자녀장려금(CTC)의 소득 기준을 대폭 상향하고 지원액도 늘리기로 했다. 만혼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난임 필수 검사항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수백만원에 달하는 난임시술비 지원에 적용되는 소득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가 우리 아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동시에 만족될 수 있도록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고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과 있는 정책만 남긴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책 시스템도 재조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연내 저출산 대책에 대한 심층평가를 도입해 효과있는 정책만 남길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년간 (저출산)종합계획을 하면서 280조원이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저출산 정책을 냉정하게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부는 또 일·육아 병행 지원제도 활용에 대한 근로감독을 확대하고 전담 신고센터를 신설해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대신 기업이 직원들의 양육 지원에 투자할 경우 비용으로 인정해 세제 지원을 늘려줄 방침이다.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기업에 ‘당근과 채찍’을 함께 내놓은 것이다.
황정환 / 오형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