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시작된 ‘은행 위기’의 공포가 금융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크레디스위스 매각으로 고조된 시장의 불안감은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를 한 차례 흔들고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지난 주말 소셜미디어 한 구석을 달군 '토스뱅크 위기설'입니다.
토스뱅크 위기설의 시작
주말 사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토스뱅크를 겨냥해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글이 쏟아졌습니다. 이 은행은 이전부터 SVB를 연상시키는 채권 중심 자산 구조와 아직 약소한 자본 규모, 초기 적자인 재무 상태 때문에 자본력이 취약하다는 우려를 받아왔는데, 지난 주말엔 그 수위가 극도로 치솟았습니다. 느닷없는 위기설에 불을 붙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토스뱅크가 지난 24일 내놓은 '먼저 이자 받는 예금'입니다. 이 상품은 이름처럼 예금자가 만기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가입과 동시에 이자를 먼저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금리는 연 3.5%. 최대 금액인 10억원을 6개월 동안 맡기면 세전 이자 1764만원을 바로 출금할 수 있습니다.
토스뱅크는 "이자 혜택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이자를 먼저 받아 재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정반대로 튀었습니다. 잇단 은행 위기 한복판에 이런 상품이 나오니 오히려 "유동성 확보가 급한 것 아니냐"는 불안이 제기됐습니다.
그리고 24일 밤, 유럽 증시가 개장하고 도이체방크 주가 폭락이 시작되자 토스뱅크 위기설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국내 은행도 위험한 것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이 토스뱅크로 향한 겁니다.
토스뱅크 유동성은 어떤가
토스뱅크는 비상장사로 이달 31일에야 2022년 공시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현재로선 작년 9월 보고서로 재무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정보의 시차도 지금같은 때엔 토스뱅크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이 때문에 토스뱅크는 27일 일부 주요 지표를 최신 수치로 공개했습니다. 첫 번째는 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입니다. 토스뱅크의 LCR은 현재 833.5%로 규제 비율인 90%의 9배, 5대 은행 평균치인 100%의 8배를 웃돌고 있습니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유동성이 너무 많아서 문제면 몰라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상태"라고 강조했습니다.
LCR은 은행이 단기부채 대비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하도록 하는 규제입니다. 산술적으로는 은행의 현금·국공채 등 고유동성 자산을 향후 30일간 빠져나갈 수 있는 순현금유출액으로 나눠서 구합니다. 대규모 자금 인출(뱅크런) 같은 유동성 위기가 닥치더라도 최소 30일은 정부 지원 없이 은행이 스스로 현금성 자산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의 유동성 위기 대응 능력이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토스뱅크가 단기 유동성이 부족해서 선이자 예금을 출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반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SVB와 토스뱅크의 자산 구조가 비슷하다는데
SVB 파산 이후 불안해진 국내 투자자와 예금자들이 유독 토스뱅크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은행의 자산 구조 때문입니다. SVB처럼 금리 인상기 손실 우려가 큰 채권 보유 비중이 높다는 이유인데요. 총자산이 2090억달러(약 271조원)에 달했던 SVB는 보유 자산의 55% 이상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미국 장기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이었습니다. 대출 비중은 35%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자산 구조는 보통 은행에선 보기 힘듭니다. 상업은행은 소비자가 예금으로 맡긴 돈을 대출로 내주고 이자를 받아 돈을 벌기 때문에 총자산의 절반 가량은 대출이 차지하는 게 통상적입니다. 하지만 SVB의 주고객이었던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은 회사를 상장하거나 투자를 유치하는 식으로 주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굳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죠. 은행엔 남는 돈을 예금으로만 맡겼습니다. SVB는 예금은 많은데 대출로 다 운용할 수가 없으니 채권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기를 맞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테크 기업들의 예금 인출 수요는 늘고, 반대로 SVB가 투자한 채권의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예금을 내주기 위해 자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SVB는 채권을 '떨이' 수준으로 내다 팔았고 18억달러의 손실을 확정했습니다. 설상가상 이달 초 25억달러 규모로 시도한 자금 유치가 실패하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SVB 재정이 불안하다'는 풍문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지면서 뱅크런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토스뱅크 자산 구조는
토스뱅크도 총자산에서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64%(작년 9월말 기준)에 달합니다. 작년 3분기 공시보고서를 보면 이 은행의 총자산은 27조3589억원, 이중 장부에 반영된 유가증권이 모두 17조6040억원입니다. 현금 자산은 2조원 정도 됩니다.대출금 비중은 7조1292억원으로 26%에 그쳤습니다. 26일 기준으로는 대출이 9조3000억원까지 늘어, 이제 30%대로 올라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먼 게 사실입니다. 토스뱅크는 아직 신생 은행인데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저신용자 대출을 잔액의 44% 이상으로 취급해야 해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렇다 보니 겉으로만 보면 대출은 적고 채권에 치우쳤던 SVB 자산 구조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우선 유가증권 구성입니다. 토스뱅크는 유가증권 자산을 모두 국공채(64%·작년 9월 기준)와 금융채(35%)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보유 채권은 모두 위험가중치 0%의 안전자산"이라고 했습니다. 또 SVB처럼 현금화가 쉽지 않은 MBS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만기별로 봐도 이미 만기가 도래했을 6개월 이내 채권이 14%(2조5446억원)였습니다. 1~2년 이내(4조2244억원)도 24%, 3년 이내(4조633억원)는 23%로 중·단기채가 대부분입니다. 설령 대규모 예금 인출 요구가 발생하더라도 현금성 자산만으로도 전체 수신(23조원) 중 4~5조원은 별도 조치 없이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반면 토스뱅크의 5년 이상 장기채 비중은 0.36%에 불과했습니다. 단기로 받은 예금을 장기 채권에 투자해 리스크를 키웠던 SVB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가격 급락' 채권 평가손실은 어떤가
비록 구성이 다르다 해도 은행이 금리 인상기에 자산 대부분을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일부 예금자에게 여전히 불안 요인입니다. 금리 급등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평가손실이 나든, 충당금을 추가로 쌓든 재무적으로는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토스뱅크는 순손실 1719억원, 기타포괄손실 2418억원으로 모두 4137억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자본금이 당시 1조3500억원이었던 신생 은행으로선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다만 출범 1년이 채 안 됐던 시점임을 고려하면 순손실은 당연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타포괄손실입니다. 여기에는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공정가치측정(FV-OCI) 금융자산의 평가손익이 포함되는데요. 토스뱅크의 작년 3분기 유가증권 평가손실은 2385억원에 달했습니다. 기준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 보유한 채권 가치가 그만큼 깎였다는 뜻입니다.
평소라면 그렇게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별 일이 없다면 만기까지 보유하면서 금리가 다시 내리면 평가손실도 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VB가 평가 가치가 급락한 채권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확정 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장의 눈초리도 달라졌습니다. '채권 자산이 많은 토스뱅크도 저렇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공포가 생긴 겁니다.
다행히 현재 토스뱅크의 채권 평가손실 규모는 600억원대로 대폭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스뱅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SVB 사태 이후 채권 금리가 내리면서 평가손실이 꾸준히 축소되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토스뱅크는 올 하반기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출범 2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는 셈입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흑자 전환까지 각각 1년 반, 4년이 걸렸습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대출 규모가 성장하면서 수익성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자본금도 3000억원 추가로 확충했다. 재무건전성에 우려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 지금 선이자 예금을 출시했나
금융업계에선 이번 위기설에 불을 붙인 선이자 예금의 출시 타이밍이 아쉽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불안한 금융시장에서 '다음 타자가 누구냐'는 위기감이 높은 상황에 선이자 예금을 출시한 건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맨 격"이라고 했습니다.토스뱅크는 당혹스러운 기색입니다. 토스뱅크는 이 상품을 작년 초부터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토스뱅크의 한 관계자는 "'지금 이자 받기' '매달 내는 돈 낮추기'처럼 이번에도 고객 입장에서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을 고민한 결과"라며 "선이자 예금은 과거에도 시중은행에서 선보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특별히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지금 출시했을까요. 토스뱅크는 정기예금으로 수신상품 라인업을 다양화할 필요가 큰 상황이었습니다. 이 은행은 2021년 10월 출범부터 이제까지 '단일상품' 체제를 내걸고 입출금 통장과 적금만 운영해왔습니다. 수시입출식 '무조건 2% 통장'으로 수신을 20조원 넘게 끌어모으며 인기몰이에는 성공했지만, 입출금에 아무 제약이 없다 보니 유동성 관리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홍민택 대표는 2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소비자 편익을 1순위로 놓고 출시한 상품이지만 은행으로선 요구불에 집중된 수신 구조를 정기예금으로 분산하고 싶은 필요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선이자 예금에는 출시 후 4일 동안 1300억원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은행 입장에선 비용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예치금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계산해보면 이자를 만기에 지급하는 통상적인 구조와 선이자 예금은 이율 차이가 0.062%포인트에 불과합니다. 중도해지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거치 기간만큼만 이자를 주는 셈이어서 은행으로선 추가 부담이 없습니다.
'막연한 공포 전염' 조심해야
토스뱅크 관계자는 "큰 비용 차이 없이 고객이 체감하는 혜택의 효과는 큰, 토스뱅크가 할 법한 '있어 보이는 상품'이었다"면서도 "신생 은행으로서 차별화에 집중하느라 시장 반응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홍 대표는 "토스뱅크가 가장 젊은 은행이다 보니 시장이 불안할 때 시선이 쏠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은행에 대한 시장 공포는 전염되면 없던 리스크도 만들어내는 '자기실현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일단 토스뱅크는 최근 며칠 간의 불안에도 예금 유출입은 통상적인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은행 위기는 '신뢰의 위기'"라며 "때로는 답답하고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소비자들이 은행에 기대하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