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에서 최근 임원으로 퇴직한 A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에 ‘해외지사와 법인업무 추진현황 점검’ 목적으로 출장을 갔다. 하지만 출장 목적과 달리 A씨는 요르단 암만 지역에서 물담배를 피우고 유적지인 페트라에 다녀오는 등 관광 일정을 소화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UAE와 이집트 출장을 간 한전KDN 임원 B씨와 UAE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2022년 2월 미국, 7월 일본, 11월 베트남 등의 출장 일정을 맞춰 현지에서 만나 여러 차례 식사를 했다. 이는 모두 코로나19로 방역지침이 강화돼 정부가 공기업 임원에게 해외 출장을 자제하라고 한 시기와 맞물린다. 이들이 다녀온 외유성 해외 출장은 A임원 5차례(8개국), B임원 7차례(14개국)나 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7일 발표한 산하 공기업 임원의 부적절한 외유성 해외 출장 사례다. 이들이 해외 출장 중 지사와 법인 관계자들에게서 받은 금전적 편의는 각각 320만원과 256만원에 달했다.
산업부는 엄중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번 사안에 대해 기관경고와 함께 이들이 부당 전가한 출장경비 환수 조치를 내렸다. 또 향후 공직 재임용시 결격 사유가 있다는 점을 이들의 인사 자료에 포함해 관리하라고 해당 공기업에 통보했다. 산업부는 이 일을 계기로 올해 상반기에 산하 41개 공공기관 임원의 해외 출장 실태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안팎에선 잊을 만하면 터지는 공기업 방만 경영의 악습이 또 불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두 임원이 외유성 출장을 간 시기에 한전은 눈덩이처럼 쌓인 적자로 경영난에 빠졌다. 한전 적자는 2021년 5조8000억원에 이어 2022년 32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한전 적자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탓도 있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단가가 싼 원전 가동을 줄이고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린 영향도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방만한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두 임원 사례는 방만 경영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점을 새삼 보여준다. 한전은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올 2분기에도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한 자구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게 먼저다. 한전 스스로 방만 경영을 없애기 위한 내부 단속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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