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오르면 국채 가치가 추락한다. 3월 14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원인이다. SVB는 총자산의 60%를 미 국채 투자에 쏟아부었다. 예금 인출 압박에 시달리다 보유 국채를 헐값에 팔았다. 부실 재무 상태가 들통났다. 40년 된 은행이 망하는 데는 44시간이면 충분했다. 스마트폰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한 거다.
167년 전통의 ‘크레디트스위스(CS)’는 위험을 무시한 공격적 투자 행태로 유명했다. 주의 경보를 도외시하다 3월 19일 UBS에 전격 합병됐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미 중앙은행(Fed)은 상설 통화스와프 상대방(5개국 중앙은행)에 달러화를 더 자주 공급하기로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를 긴급 소집했다. 국제금융시장 위기 징후를 감지하고 선제 대응하는 모양새다. 국내 은행은 SVB, CS 등과 영업구조가 다르다. 채권 보유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그래도 세 가지가 우려된다.
첫째, 디지털금융 발달과 금융회사 영업방식 간에 비대칭성이 심각하다. SVB 사태는 은행에서 돈을 빼는 데 몇 초면 너끈함을 보여준다. 인터넷 입출금·송금은 365일, 24시간 가능하다. 그에 비해 금융회사의 자산처분·조달은 영업시간에만 할 수 있다. SNS 가짜뉴스 한 방에 금융회사가 밤새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최근 저축은행 간 금리를 비교하는 스마트 폰 앱(‘SS톡+’)을 보급했다. 저축은행 간에 급격한 입출금 변동이 발생했다. 심할 경우 특정 저축은행에서 뱅크런도 가능하다.
둘째, 채무변제 순서가 교과서 내용과 다르다. 은행이 망할 때는 손실 분담에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주주(주식)가 부담한 뒤 잔여 손실은 채권자(채권) 몫이다. 그런데 크레디트스위스 발행 코코본드(은행 자본으로 인정받는 신종자본증권)가 주식보다 앞서 전액 상각됐다. 코코본드 상품 매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국내 코코본드의 올해 말 만기도래액이 8조6000억원이다. 차환 발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셋째, 작은 금융회사도 금융시스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SIB)’ 규제는 2010년 도입됐다. 중소 규모 은행보다 자본금을 2.5% 더 쌓아야 한다. 소수의 SIB만 집중 관리하면 시스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금융위기 시작점인 실리콘밸리은행은 SIB가 아니다. 국내에도 작지만, SIB인 곳이 여럿이다.
2020년 3월 금융시장을 뒤흔든 주범은 중소 증권사였다. 작년엔 보험업계 후순위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재발행 여부가 시장을 경색시켰다. 최근 새마을금고의 건설업·부동산 관련 대출 연체액이 한 달 새 9000억원 급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은 금융시스템을 단번에 교란할 수 있다. 새마을금고는 SIB인 거다. 우체국도 숨은 SIB다. 우체국 자금 조달 운영 행태가 미국 SVB와 빼닮았다. 총자산 60%를 유가증권(주로 채권)에 몰빵 투자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불과 1년 새 0%대에서 연 5%로 급등했다. 이 정도 인상 폭은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1994년 Fed가 기준금리를 연 3%에서 6%로 올렸다. 신흥국에서 자본이 유출됐다. 가장 먼저 당한 국가가 멕시코다. 1995년 ‘테킬라 위기’다. 섬세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우선 손실흡수능력 확보가 핵심이다. “SVB 자본비율이 20%였다면 파산을 막을 수 있었다.” 3월 14일자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 사설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추가적립 3종 방파제(경기대응완충자본·스트레스완충자본·특별대손충당금제도)를 준비 중이다. 필요하면 한시적으로 ‘20% 자기자본비율’도 고려해 볼 상황이다.
금융규제 컨트롤타워도 금융위로 일원화해야 한다. 새마을금고, 우체국 금융 부문의 규제·감독 관할부처는 각각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다. 금융규제·감독에 전문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위기 수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 전쟁 중이다. 고금리 환경은 생소한 영역이다. 살얼음판이다.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꼼꼼히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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