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은 가시덩굴로 막고, 찾아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고 했더니,
백발이 (나의 속셈을)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시대 ‘백발가’라는 시조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내 맘대로 되는가. 모든 생명체는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든 수백 년을 사는 거북이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친다. 사람도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꽃이 피고 지듯이 인생살이도 꽃 피는 젊은 시절이 있었고, 나이 들어가면서 노년을 보내다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종교의 영역이거나 상상의 영역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나만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주된 직업에서 은퇴를 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다. 어느 생명보험회사에서 만든 ‘은퇴백서’를 보면 은퇴 후에도 활동기, 회상기, 간병기의 점진적인 3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1단계 ‘활동기’는 은퇴 후 10~20년의 기간으로 건강한 신체와 더불어 활동적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시기다. 직장 생활 또는 경제활동을 위해 하지 못했던 일,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기간은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의 전성기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과제와 경제적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도전적인 과제가 많을수록 돈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젊으니 새로운 일거리를 찾거나, 하고 싶었던 것을 취미생활로 즐기는 것도 좋다. 운동, 여행 등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자.
2단계인 ‘회상기’는 활동기가 끝나고 10~20년의 기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활동적으로 할 수는 없으나,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자기 자신이 살아온 좋은 추억을 되새기며 가족, 친구를 자주 만나면서 인생을 복기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활동기를 지나 회상기에 접어들면 지출도 줄어 경제적 부담이 준다. 그러나 다음 단계인 간병기로 가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병에 걸리거나 치매 등의 이유로 노년기 대부분의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된다.
3단계 ‘간병기’는 짧으면 1년 정도이지만, 길어지면 1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이러한 간병기는 혼자서 생활하기가 힘들고 요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제3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기다. 이 기간이 짧을수록 노년의 행복 지수는 높아지는 것인 만큼, 평소에 건강을 저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통계에 의하면, 약 16년을 유병기로 보내야 한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식사를 잘하고 의사 조언도 잘 듣고 간병해 주는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판단이 흐려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간병 비용에 대한 준비, 자의적 판단이 어려운 시기가 올 때 해야 할 일을 주변에 일러두어야 한다. 가족, 지인 등 내 주변인들에게 마음의 선물도 준비하자. 살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나누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줄 것이다. 활동기와 회상기는 길어도 좋지만, 간병기는 짧을수록 좋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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