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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준비생의 아이디어 천국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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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서울의 미래’로 불린다. 적어도 비즈니스에선 그렇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수많은 사람이 도쿄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들에게 도쿄는 ‘지붕 없는 뮤지엄’이자 ‘담장 없는 캠퍼스’다. 아주 작은 변화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정성 어린 디테일과 감각적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가장 가까운 섬나라. 그뿐만이 아니다. 도쿄에는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 닿는 곳마다 녹아 있다. 뿌리 깊은 장인정신도 숨어 있다. 그래서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도쿄의 문이 닫힌 지 3년. 도쿄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국경이 봉쇄된 기간에 이 도시는 어떻게 변했을까. 고상하기만 하던 편집숍들은 더 친절한 눈높이 큐레이션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소량 제품은 더 많은 맥락을 품은 세밀한 구성으로, 낡고 오래된 장소들은 100년 뒤를 내다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들은 도쿄에 ‘조용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주 웨이브는 퇴사준비생의 마음으로 도시를 탐험해온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와 시티호퍼스팀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도쿄다. 이들은 일본의 문이 열리자마자 도쿄로 달려가 그 변화의 지점들을 관찰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로 서점가를 뒤흔든 지 6년 만에 후속작 <퇴사준비생의 도쿄2>를 펴내며 더 예민한 눈으로 달라진 인사이트를 잡아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찾은 영감은 시티호퍼스 뉴스레터로 매주 배달된다. 직업적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퇴사준비생’이라는 이 도발적 단어는 여행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의 마음엔 늘 성장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를 바꿔 더 가치 있는 내일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가득하니까.

흔하고 익숙하던 장소도 퇴사준비생의 관점을 갖고 떠나면 완전히 다른 맥락이 된다. 내 삶을 지루하게 하는 것들에서 그저 벗어나고 싶다던 무모한 담력은 어느새 나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꽉 찬 실력이 돼 돌아오기도 한다.

퇴사준비생의 마음으로 여행하는 이들은 말한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퇴사준비생이 돼야 한다고.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진짜 여행이라고.
"아는 사람만 사라" 콧대높던 日 편집숍, 친절한 큐레이터로 변하다
(1) 고상한 큐레이션 → 눈높이 큐레이션

‘쓰타야 티사이트’는 도쿄 여행자에게 성지 같은 곳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도쿄 인사이트 트립에서 빠지지 않는 리스트였다. 벤치마킹의 목적 중 하나는 ‘큐레이션’. 쓰타야 티사이트를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자본론>에서 큐레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단계에선 물자가 부족해 만들기만 해도 물건이 팔렸다. 두 번째 단계에선 상품이 넘쳐나는 때다. 고객이 물건을 효과적으로 살 수 있는 유통 채널과 같은 플랫폼의 가치가 높았다. 세 번째 단계는 상품과 플랫폼이 포화한 시대. 여기서 필요한 것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안해주는 큐레이션이다.


그의 설명대로 지금은 ‘서드 스테이지’이자 큐레이션의 시대다. 도쿄 곳곳에서 여러 형태의 편집숍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큐레이션 영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부분의 편집숍들은 지금껏 고상했다. 전문성과 안목을 바탕으로 감도 높은 제품을 선별해 갖춰 놓고 ‘아는 사람만 사세요’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큐레이션은 기본이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큐레이션을 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향수 편집숍인 ‘노즈숍’이 대표적이다. 향수 편집숍이라면 뭔가 우아해야 할 거 같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우선 이름부터 파격적이다. 코 매장(노즈숍)이라니. 직관적이긴 하지만 보통의 향수 매장과는 다르다. 매장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고급스럽거나 세련된 연출과는 거리가 멀다. 초록색 네온사인을 주요 조명으로 쓰고 있고, 매장 곳곳에는 코에만 색칠한 하얀 석고상을 놓아 두었다.

브랜드명과 매장 구성은 시작일 뿐이다. 노즈숍은 고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첫째로 ‘향수 가차(뽑기)’. 향수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설치한 기계다. 900엔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샘플 사이즈의 향수가 랜덤으로 나온다. 덕분에 고객은 큰 부담 없이 향수를 경험할 수 있다.

가장 재미있는 건 향기를 언어화했다는 것. 향수를 고르는 게 어려운 이유는 향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어서다. 색에는 ‘빨주노초파남보’가 있고, 소리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누구나 공통된 인식을 할 수 있는 반면 향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후각 연구소를 만들어 고객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인공지능(AI) 솔루션 업체와 협업하는 등 향을 언어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익숙한 영역과 향의 연결도 눈에 띈다. 향수를 향 그 자체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일상의 영역과 교집합을 찾아 향을 더 쉽고 가깝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그래서 축제, 여행,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영역을 끌어들여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나 팝업 이벤트를 연다.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무리 큐레이션 역량이 뛰어나고 편집의 안목이 높더라도 구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없어서다. 그래서 편집숍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확장하고 나선다. 편집숍의 고상함을 내려놓고 고객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방향으로.

(2) 목적이 다른 소량화 → 맥락에 맞는 소량화

1코노미(1+Economy), 미코노미(Me+Economy), 싱글 이코노미. 표현은 달라도 의미는 같다. 혼밥, 혼술 등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며 소비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 현상이다. 이 트렌드에 맞춰 기업들은 소 량화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혼자 먹는데 양이 많을 필요가 없으니까.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 먼저 생겨났다. 일찌감치 시작된 만큼 진화한 형태의 소량화도 등장했다. 바로 ‘맥락적 소량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장인간장’을 예로 들어보자. 장인간장은 간장 편집숍이다. 일본 전역의 30곳 남짓한 양조장에서 장인들이 만든 100여 종의 간장을 편집해 판매한다. 장인이 만들었으니 간장 맛이 더 나을 테다. 하지만 간장이 맛있다고 간장을 마시는 사람은 없다. 간장은 어디까지나 음식의 맛을 위해 곁들이는 조미료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맛이 아니라 간장을 ‘곁들이는 상황’을 중심으로 간장을 제안한다. 간장의 종류를 6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카테고리별로 어울리는 음식의 종류를 설명한다.

그런 뒤엔 간장을 L 단위의 대용량 용기 대신 작은 사이즈의 100mL 병에 담아 판다. 하나의 간장을 여러 요리에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요리를 적합한 간장으로 조리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간장이 필요한 맥락에 맞게 최적의 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선택한 방식이다.

이는 혼밥, 혼술 등의 트렌드에 맞춰 용량을 줄이는 실용적 소량화와는 목적이 다르다. 집에서 한 종류의 요리만 먹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때그때의 음식에 어울리는 여러 종류의 간장을 구비해 두려면 맥락적 소량화가 필요하다. 간장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맥락적 소량화는 맥락이 구분되는 다양한 영역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이자카야村 된 시부야 랜드마크…"소도시 골목길 다 모였다" 북적
(3) 로컬의 진화…'연출된 로컬'

팬데믹 이후 도쿄에서 변화가 가장 큰 곳을 꼽으라면 시부야다. 도쿄 올림픽을 맞아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여러 오피스 빌딩과 상업 시설이 완공돼서다. 그런데 시부야에 새로 생긴 상업 시설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과거 상업 시설을 개발할 땐 서점, 마트, 극장을 핵심 입주사로 선정했다. 큰 면적을 사용하는 데다 집객력도 높으니 상업 시설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물건은 온라인으로 사고, 영화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보는 시대에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생겨난 요즘 유형 네 가지가 있다. 일본에 처음 상륙하는 해외 브랜드, 아직 도쿄에 진출하지 않은 지역의 강력한 브랜드, 대중적 브랜드지만 실험적으로 기획한 플래그십 공간,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기획해서 론칭하는 매장이다.

시부야에 새로 생긴 미야시타 파크는 이런 ‘암묵적 공식’에 충실한 곳이다. 가장 임팩트가 강한 건 1층에 들어선 일종의 푸드코트.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각 지방에서 엄선한 맛집들을 옮겨놨다. 여기까지만 보면 백화점 식품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콘셉트와 공간 연출이 특별하다. 이곳의 이름은 ‘시부야 요코초’다. 요코초는 일본어로 식당과 술집이 늘어선 골목길을 뜻한다. 대형 상업 시설에 로컬의 매력을 끌어오겠다는 시도다. 이름처럼 거대한 이자카야 같으면서도 골목길처럼 꾸몄다.

시부야 요코초엔 약 100m에 걸쳐 19개 식당과 술집이 있다. 벽이나 문 같은 공간 구분이 없다. 다닥다닥 이어져 있고 자리도 비좁다. 공간 전체는 주황빛 조명이 아른거린다. 이자카야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너른 공간에 통째로 구현한 셈. 통로 바닥을 1m 남짓한 폭의 아스팔트 도로처럼 깔아 놓으니 마치 거대한 이자카야 안 골목길이 떠오른다. 분명 가짜인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요코초다.

시부야 요코초의 방점은 로컬 식당을 단지 도쿄에 옮겨 놓은 것에 있지 않다. 로컬을 로컬스럽게 연출했다는 것. 그렇게 외부의 로컬을 끌어와 스스로가 로컬이 되니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가 될 수밖에.


(4) 재미 하나로 충분?…'이득'이 더해져야

‘재미’는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 중 하나다.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 펀슈머(fun+consumer), 펀놀로지(fun+technology), 리테일테인먼트(retail+entertainment) 등 표현마저 다양하다. 매년 어떤 형태로든 등장할 정도면 트렌드라기보다 인간 본성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재미를 거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재미 요소를 더 강력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도쿄에 있는 구라 스시 플래그십 매장에선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구라 스시는 저가형 회전 스시 브랜드다. 가격도 저렴한데 심지어 맛있기도 해 점점 인기를 얻었다. 비결은 정보기술(IT)화. 1997년부터 초밥 가게에 테크놀로지를 접목했다. 접시 아래에 칩을 심어 초밥이 매장을 도는 시간을 관리한다. 일정 시간 이상 컨베이어 벨트를 돌아다닌 초밥은 폐기해 신선도를 유지했다.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시 생산량을 결정하고, 계산할 때 접시 수를 자동으로 세어 폐기율을 낮췄다. 회전율이 높아지니 가격도 낮아졌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구라 스시는 2020년부터 글로벌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콘셉트는 사이트이팅(SightEating). 관광과 식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이 콘셉트는 젊은 세대와 도쿄에 방문하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다. 그래서 아사쿠사, 하라주쿠 등에 있다.

구라 스시 플래그십 매장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초밥을 먹고 테이블 옆에 난 구멍에 접시를 5개 넣으면 주문할 수 있는 태블릿 PC에서 자동으로 게임이 실행된다. 그 게임의 간단한 미션을 통과하면 테이블 위에 있는 가차(뽑기)에서 캡슐이 나온다. 이 캡슐에는 또 다른 게임을 할 수 있는 티켓 혹은 ‘꽝’이 들어 있다. 티켓을 얻었다면 매장 한쪽에 마련된 소총 쏘기, 링 던지기 등을 할 수 있다. 이 게임에 성공하면 구라 스시의 굿즈, 특제 된장국 등의 선물을 준다. 네 접시를 먹은 사람이라면? 한 접시를 더 먹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하는 재미도 있고, 운이 좋으면 선물도 받을 테니까. 이득이 되는 재미를 제안하면 재미의 크기는 몇 배 더 커진다.


(5) 포토제닉 → 무비제닉

공간을 기획할 때 암묵적 룰이 있다. 사진 찍을 거리를 만들 것. 목적은 명확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해야 사람들이 오고, 고객이 SNS에 올린 사진이 또 다른 고객을 불러들이니까. ‘가찍비’(가격 대비 찍을 게 많다는 뜻)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진 찍을 거리는 중요해졌다.

도쿄의 거리를 걷다 보면 변화가 감지된다. 제품 디스플레이에 움직임이 있는 쇼윈도가 곳곳에 보인다. 특히 긴자, 오모테산도 등에 있는 명품 매장, 플래그십 매장, 백화점에서 이런 시도가 도드라진다. 이제 사진은 기본이고 쇼트폼 영상을 찍어 올리는 시대. 이런 흐름 속에서 포토제닉을 넘어 무비제닉을 연출한다.

루이비통 오모테산도 매장은 단연 화제다. 루이비통은 2023년 들어 ‘구사마 야요이’와 여러 영역에서 컬래버레이션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설치 미술가로 ‘호박’ 작품과 도트 패턴이 시그니처다. 이번 협업에선 컬러풀한 색의 도트 패턴을 제품과 매장에 녹여냈다.

이 매장은 쇼윈도에 점을 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도 구사마 야요이가 직접 나서서. 그는 붓을 들고 유리창에 점을 찍으면서 이따금 사람들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눈을 깜빡거리고, 몸도 움직이는 등 진짜 구사마 야요이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로봇이다. 그를 대신해 로봇이 퍼포먼스를 한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줄지어 영상으로 담는다.

루이비통만 그러는 게 아니다. 긴자 유니클로 플래그십 매장도 움직이는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줄지어 선 형형색색의 점퍼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웨이브를 만든다. 양말과 우산도 움직이면서 고객을 맞이한다. 와코백화점, 긴자식스 등 백화점에서도 역시 영화 같은 디스플레이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거리의 쇼윈도를 비롯해 매장 곳곳에선 영상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모두 영상을 찍어 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시도는 의미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김보라 기자/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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