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됨' 혹은 '원인과 결과가 되풀이돼 상황이 악화하는 일'입니다. 주택 시장에 악순환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 관망세가 깊어지면서 거래 둔화를 넘어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청약시장에선 아파트 미분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입니다. 건자재와 인건비 상승, 공기 지연 등으로 공사비는 1년 새 30%가량 불어났습니다. 안정적인 공사비 확보가 가능한 사업이 급감해 건설사가 신규 수주를 사실상 중단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자 가뜩이나 어려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시장은 더더욱 얼어붙고 있습니다. 수주 현장에 건설사가 보이지 않고 PF 대출 부실은 심화하는 등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수주 시장에 건설사가 사라졌다"
시공능력평가 10위 내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보수적 관점에서 선별적으로 수주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향후 공사비 회수가 가능한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와 '사업성이 좋은' 프로젝트만 수주합니다. 중소·중견 건설사는 기존 현장을 공사비와 공기 범위 내 마무리하기도 벅찹니다. 공사비 인상으로 기존 현장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추가 수주는 엄두를 내기 힘듭니다.도시정비사업이 경우 통상 조합설립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뒤 착공까지는 3년 이상 걸립니다. 사업시행인가를 거치더라도 관리처분 총회와 철거 작업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건설사들은 당장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정비사업 수주에 적극적인 이유는 미래 일감을 확보하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올해 분양해 시공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상업시설 등 분양 상품 수주를 꺼립니다. 금리 상승과 공사비 인상을 반영하면 분양경쟁력이 떨어져 공사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브릿지론으로 자금을 조달해 토지를 매입한 사업장이 인허가가 끝났음에도 본PF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시공할 건설사를 찾을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찬 바람 부는 비주거시장
지난해 하반기 브릿지론을 연장한 사업지에 만기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사업 주체인 시행사가 추가 이자 등 금융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대주단이 1년 뒤 이자를 받는 '이자 후불제'까지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신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이 선순위 대주단으로 참여한 프로젝트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브릿지론 프로젝트들이 이러한 어려움에 봉착해 사실상 기한이익상실(EOD) 상태입니다. 사업성이 떨어졌음에도 이자납부 등을 유예해주는 조치가 부실을 연장해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금융권에서는 최근 HUG(주택도시보증공사)와 HF(주택금융공사)의 PF 보증부 대출만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HUG와 HF는 아파트 등 주거시설 대출에 대해서만 보증서를 발급해 줍니다. 이는 곧 PF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 지식산업센터 상업시설 등 비주거시장에 참여할 금융기관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수익형 부동산'으로 불리는 비주거 시설을 분양하는 신규 사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아파트보다 분양 시장이 더 침체한 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더 침울합니다.
이런 상황이 조만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금리 불확실성이 가시고, 소비자의 주택 구매 심리가 회복돼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은행 파산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 이 같은 일이 조만간 현실화하기는 힘듭니다. 중소·중견 건설사가 공사비 인상과 미분양으로 경영 환경 악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중견 건설사 한두 곳이 넘어져야 정부 당국이 조처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나돕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