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기업공개(IPO) 시장 대세는 중소형주였습니다. 상장하면 웬만하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에 형성된 뒤 상한가)' 직행이었죠. 연초 조(兆) 단위 대어들이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 레이스를 중단한 것과 대조됩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대세에 올라타야겠죠. 안 그래도 중소형 IPO가 상장을 서두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하반기쯤 대어급 주자들이 상장에 나서기 전에 움직인다는 겁니다. 지금은 중소형주가 대형주보다 잘 나간다고는 하지만, 하반기 큰 놈들을 향해 자금이 쏠릴 수 있어섭니다.
잘 나가는 중소형주…꿈비, 공모가 대비 382%↑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한 중소형주(스팩합병 제외) 14개 기업 가운데 따상 기업은 10개사(꿈비·미래반도체·오브젠·스튜디오미르·이노진·샌즈랩·삼기이브이·자람테크놀로지·바이오인프라·나노팀)나 됐습니다. 장중 따상을 터치한 업체까지 포함입니다.이중 꿈비는 올해 처음으로 '따상상(따상 후 다음날 또 상한가)'을 기록했습니다. 금양그린파워, 제이오, 한주라이트메탈, 티이엠씨는 따상엔 성공하지 못했지만, 공모가 대비로는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3일 상장한 금양그린파워는 이틀 연속 급등해 주가는 전날 종가(2만6000원) 기준으로 공모가(1만원) 대비 160% 웃돌고 있죠.
따상 기업 대부분은 따상 이후 주가가 더 올라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꿈비는 공모가 대비 38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요. 이 외에도 미래반도체(185%), 오브젠(132%), 나노팀(107%), 스튜디오미르(77%), 자람테크놀로지(66%), 샌즈랩(59%), 이노진(35%) 등 모두 수익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와 달리 대어급 주자들의 상황은 처참합니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둬 상장을 연기하는 사례가 속출했죠. 오아시스가 대표적입니다. 컬리와 같이 거래소 상장예비심사 승인까지 받아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도 수두룩합니다. 이처럼 대형주가 아닌 중소형주 중심으로 흥행하는 현상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증시가 불안한 만큼 대어들에 많은 투자금을 쏟아붓는 것에 시장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이 기회다"…중소형주 상장 '러시'
이때가 기회라고 판단한 걸까요. 중소형주들의 상장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1분기에 IPO를 추진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올해 들어(2023년 1월 1일~3월 16일)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 수는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제외하고 10곳입니다. 작년 이 기간엔 11곳, 직전년도(2021년) 같은 기간엔 8곳이 예비심사 청구서를 접수했습니다. 올해도 계속된 증시 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꽤 활발했다고 볼 수 있죠.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더군다나 하반기에 조단위 대어들이 IPO를 본격화하는 점도 부담이 된 것"이라며 "현재 중소형주가 더 대세라고는 하지만 자금 쏠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상장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때도 그랬죠. 당시 IPO를 계획 중이던 기업들이 공모 일정을 미루는 일이 발생했었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으로의 자금 쏠림이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 나왔었습니다.
두산그룹의 로봇 자회사 두산로보틱스는 연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어 상반기 안에 거래소에 예비상장심사를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보증보험도 다음달께 상장심사를 청구하겠단 계획입니다. 두산로보틱스와 서울보증보험은 모두 기업가치가 수조원대에 이르는 IPO 대어로 평가받고 있죠.
다만 증시 변동성이 크다 보니 서두른다고 해서 다 원하는 때 상장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의 심사가 그 어느 때보다 깐깐해지면서 상장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푸념입니다. 과거에 비해 오래 걸리고요.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높다고 판단되는 기업엔 승인을 잘 내주지 않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기준으로 공모받은 후 손실 볼 리스크가 있는 기업은 웬만해서 승인을 잘 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급하게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보단 중장기적으로 유동성이 확보된 기업들을 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금 조달이 시급하지 않은 일부 기업들은 상장 일정을 미루고 일단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튼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행사 차원에서 상장을 보류하고 가치를 올리기 위해 내실을 쌓으면서 준비하는 기업들도 여럿 보인다"고 귀띔했습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