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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vs 금융시장 안정…SVB 사태로 자기모순에 빠진 F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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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로 인해 미국 중앙은행(Fed)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뜨거운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 재점화 조짐으로 3월 21~22일에 예고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SVB 파산 여파 확산으로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뉴욕 공포지수, 3개월 만에 최고치
미국 뉴욕증시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예금주를 보호하고 다른 은행들의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한 전날 밤 연방 당국의 발표와, 추가 위기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결국 혼조세로 마감한 뉴욕증시는 일각에서 우려했던 '블랙 먼데이'를 피했다는 점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90.50포인트(0.28%) 내린 3만 1819.14에 거래를 마쳐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S&P 500 지수도 5.83포인트(0.15%) 내린 3855.76으로 다소 물러섰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거의 2포인트 오른 26.69로 작년 말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공포의 진원지인 은행주들은 이날도 일제히 급락하며 전체 지수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위기설에 휘말린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지난주 30% 이상 급락한 데 이어 이날 추가로 61.8% 폭락했고 웨스턴얼라이언스뱅코프(-49.3%), 팩웨스트뱅코프(-45.3%), 자이언뱅코퍼레이션(-25.7%) 등 지역 중소은행들도 폭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49.96포인트(0.45%) 오른 1만 1188.84에 장을 마감해 홀로 웃었다. 당초 3월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을 고려하던 연준이 잇단 지역은행 파산 사태에 내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거나 아예 금리인상을 쉬어갈 것이란 관측이 주가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美 시그니처은행도 무너져
SVB 사태로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도 무너졌다. 10조원이 넘는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이사인 바니 프랭크 전 하원의원은 13일(현지시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금요일 늦게 예금 인출 사태를 당하기 전까지 문제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며 지난 10일 하루에만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당일 뱅크런은 "순전히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전염된 것"이라면서 SVB발 공포 심리가 퍼진 탓에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해 체이스 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으로 옮겼다고 프랭크 전 의원은 전했다.

서부로도 진출한 시그니처은행은 2018년 가상화폐 산업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그면서 사세를 급속히 확장했다.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365일 하루 24시간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고, 디지털 자산과 관련해 165억달러(약 21조5000억원)의 예금을 유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지난 1년간 Fed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여파로 실리콘밸리의 테크 업계와 가상화폐 등 '거품이 많이 낀' 자산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진 것이 시그니처은행에 악재가 된 것이다.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실버게이트가 지난 9일 자체 청산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일 미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SVB가 전격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서 '다음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심리가 확산, 뱅크런을 촉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민 깊어지는 Fed
미국 은행들의 예상치 못한 파산 소식에 Fed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SVB 파산의 근본 원인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국채 가격 하락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초우량 자산으로 알려진 미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에 따른 여파를 Fed가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SVB 파산 사태로 연준이 '인플레이션 잡기'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40년만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지상과제였지만, 연준의 또 다른 존재 이유는 미국의 금융시스템 안정이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됐다는 것이다. 프랑스계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미국 금리 분야 대표 수바드라 라자파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Fed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라며 "다만 그럴 경우 금융 시스템의 약점이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지금껏 금리 인상으로 충격을 받은 다른 미국 은행의 현실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자파 대표는 Fed가 인플레이션 대처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고수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 등에 예금보험 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보증하고, Fed에 새로운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같은 긴급 조치를 취한 것은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기준금리 인상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021년까지 보스턴 연은 총재를 지낸 에릭 로젠그렌은 "미국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걱정하면서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나와
이에 따라 시장에선 연준이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목표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당초 시장은 연준이 이번 달 FOMC에서 '빅스텝'(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것)을 밟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SVB 파산 이후엔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베이비 스텝'을 유지하면서 숨을 고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이번 달 회의 때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이날 오전 8시30분 기준으로 89.3%에 달해 0.5%포인트 인상 확률 10.7%를 크게 앞섰다.

골드만삭스는 한 걸음 더 나가 연준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긴축 기조는 유지하겠지만, 이번 달에는 일단 쉬어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초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던 골드만삭스는 전망치를 변경한 이유에 대해 "향후 경제의 불확실성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바클레이즈도 기준금리 동결로 입장을 바꿨다. SVB 파산 사태가 정리된 이후엔 긴축정책으로 복귀할 수 있지만, 이번 달 인상은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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