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리더는 이해관계자에게 기업에 관해 숫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라고 한다. 과거 설명 책임은 주주와 채권자 중심의 수탁보고에 한정됐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대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등장하면서 설명 책임도 주주와 채권자에서 관련 이해관계자로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업이 아니라 노조의 설명 책임이 화두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 개혁의 출발점은 회계 투명성이라고 선언하는 등 정부는 노조법 제27조에 근거해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기업의 전자공시 시스템(DART)을 노동조합에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부 요구에 자료를 제출한 노조는 37%(120개)에 그쳤으며, 63%(207개)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회계의 본원적 기능은 수탁보고 책임의 이행이다. 노조의 주주는 노조원이니, 당연히 노조의 대표는 노조원에게 회계의 수탁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 노조법 제26조에서도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기업이 아닌 노동조합에 대해 비노조원에게까지 회계장부 열람권을 허용하도록 하는 것은 회계의 본원적 기능이나 현행법상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는 노조회계 공시시스템 구축은 노조원에게만 접속을 허용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회계장부 열람이나 공시시스템 구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노조법 제25조에서는 노조의 회계감사원이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회계감사원의 적격성에 관해 명확한 규정이 없어 감사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고용부가 추진하는 회계감사원의 적격성 부여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용부는 미국의 노조회계공개법을 모델로 개선안을 마련하는 듯싶다. 이 법은 노조 회계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노동부에서 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계정보를 정책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논란이 되는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회계처리다. 가스공사는 작년 2조4634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음에도 올해 무배당을 선언했다. 8조원이 넘는 미수금 때문이다. 공사는 국내 판매가격이 해외 구입가격보다 낮을 때 그 차액을 손실이 아니라 미수금으로 처리한다. “요금 인상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공문에 기댄 회계처리다.
이런 회계처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문제 삼은 바 있으며, 이번에는 소액주주연대가 가스공사에 미수금 반환 소송과 채권 추심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미수금 방치를 이유로 주주대표소송을 걸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회계정보는 제정이나 감독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노조 회계에서도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감사공영제’ 도입을 주장한다. 감사공영제는 공공성이 높은 비영리 및 공익법인 등의 재무 정보에 대해 회계감사 의무를 부과하고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되, 그 공공성을 인정해 회계감사 비용을 공공자본이나 사회기금으로 보조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런 공공성 범위에 노조 회계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노조 회계의 투명성과 관련해 감사공영제 도입과 적용이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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