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은 고전이라 부르기엔 다소 겸연쩍다. 출간된 지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1년 발표된 이 작품은 세대를 거쳐 회자될 것이다. ‘인공지능(AI)을 예견한 고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김대식 KAIST 교수는 생성형 AI 챗GPT와의 대화를 책으로 엮으면서 “챗GPT는 21세기 ‘바벨의 도서관’”이라 표현했다.
소설은 무한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다. 육각형의 방이 무한히 쌓여 있는 구조에 각 층의 책장마다 책이 가득하다. “모든 언어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것”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도대체 이런 걸 알아서 어디다 쓸까 하는 지식마저 포함한다. 미래의 상세한 역사, 대천사들의 자서전, 도서관의 정확한 색인 목록, 셀 수 없이 많은 거짓 목록, 그런 목록들의 오류에 대한 증거, 진짜 목록의 오류에 대한 증거….
각 책은 410쪽인데, 무의미한 글자의 나열 속에 진리가 일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불필요한 책을 없애는 방식으로 도서관을 정리하려 시도하지만, 도서관이 너무 방대해 인간의 손이 미치는 범위가 미미하다.
이쯤 되면 소설은 챗GPT에 대한 우화처럼 읽힌다. 챗GPT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지식을 빨아들인 뒤 재가공해 무한대의 문장을 쏟아낸다. 하지만 결국 그 결과물을 정돈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이제 인간은 AI의 오류를 찾고 바로잡는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작품은 ‘아르헨티나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의 대표작이다. 보르헤스와 도서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장서를 갖춘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언어 신동’이었던 보르헤스는 여덟 살 때 <돈키호테>를 읽고 영감을 받아 ‘치명적인 모자의 챙’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도서관 사서로 오랫동안 일하고 국립도서관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천국이 있다면 틀림없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벨의 도서관’을 만나는 과정은 조금 까다롭다. 인터넷 서점에서 작품명을 검색하면 엉뚱한 책들이 나온다. 보르헤스가 기획한 세계문학 시리즈다. 보르헤스는 이탈리아의 출판인 프랑코 마리아 리치와 손잡고 자신을 행복하게 한 작가 40인의 작품을 추려 29권의 책을 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등이다. 이 시리즈 이름을 ‘바벨의 도서관’이라고 했다. 보르헤스가 쓴 단편소설을 읽고 싶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 보르헤스의 단편을 묶은 <픽션들>(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집 앞 도서관의 ‘인간’ 사서가 알려준 사실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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