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넷플릭스의 조직문화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규율과 통제에 의해 직원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성숙한 조직원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막중합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문화도 비슷합니다. 황조은 강남언니 커뮤니케이션 리더 역시 ‘자유’와 ‘자율’은 받침 하나만 다를 뿐이지만 실상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율적 인재는 자유롭게 일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담은 글을 한경 긱스(Geeks)에 보내왔습니다.
자유로운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이 스타트업을 다니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회사가 자유로워서 좋겠다’는 말. 맞다. 스타트업은 자유롭다. 후드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 쓰고 출근해도 복장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오히려 정장을 입으면 오늘 어디 가냐며 주목받는다), 재택 근무나 출퇴근 시간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는 빈백 소파에 누워 일하거나 야근 시간에 맥주 한 캔을 곁에 두고 일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그뿐이랴. 스타트업을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가장 놀라워하는 점이 바로 수평적인 소통 문화다. 아무리 직급 없이 영어 닉네임으로 직원 간에 부른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 때문에 대표나 상사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물론 회사마다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경험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수평적인 소통 문화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역사가 긴 대기업에 비해 인사이트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의사결정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치열한 논쟁과 솔직한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 입사한 대학생 인턴이 대표에게 손을 들고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박수 받는 문화로 여겨진다.
이렇게 스타트업에 다니면 출퇴근 시간과 복장부터 사무실 인테리어, 소통 방식까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자유로운 근무 환경 때문에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가 두렵다는 말까지 많이 한다. 반대로 스타트업에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이 자유로운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이직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다뤄보려 한다.
자율적 인재는 자유롭게 일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와 ‘자율’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두 단어는 언뜻 보기에 비슷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일하려 한다면 최악의 스타트업 생활을 경험할 확률이 크다. 이 오류를 벗어나지 못해 스타트업 생활에 힘들어하는 동료를 수도 없이 봤다. 결국 자신은 스타트업에 어울리는 인재상이 아니라고 자책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부적응을 리더십이 미성숙한 회사 탓으로 돌리며 다시 스타트업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자유’는 국어사전에서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자율’은 ‘구속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을 뜻한다. 남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서로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다.
스타트업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먼저 띈 건 스타트업의 자율성보다 겉보기에 자유로운 환경일 것이다. 스타트업에 다니면 회사에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해도 되고, 회식에서 혼자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다시 말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건 아닐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의미는 덜 알려져 있다. 자음 한 글자 차이로 자칫 자율을 자유의 의미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간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운동장 열 바퀴를 뛰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간 독한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부터 든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조금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이겨낼 것이다.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유롭기만 한 자세로 일하기엔 개인과 조직이 해결해야 할 사업적 미션, 이겨내야 할 장애물은 너무나 많다.
기존 사회에 없던 신산업 분야일수록 헤쳐나가야 할 길이 더욱 험난하다. 1년 안에 회사의 흥망성쇠가 몇 번이고 좌우될 만큼 속도가 생명인 비즈니스다. 그 때문에 스타트업은 대개 자율적으로 일하는 인재상을 선호한다. 타인에게 지시를 받지 않고도 자신이 세운 목표와 원칙을 위해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스타트업에서 자율적인 인재는 이렇게 일한다. 먼저 회사의 장기적 미션과 중단기적 목표를 정확하게 인지한다(이 과정에서 회사는 직원에게 제때, 정확하게 목표와 방향성을 공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 다음 회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자신이 해결할 문제를 찾아낸다. 끊임없이 사업 방향성에 어긋나지 않는지 유념하며 동료와의 협업을 다한다. 그는 문제해결에 도움된다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어도 ‘맨땅에 헤딩’으로 어떻게든 되는 방법을 찾는다. 때로는 팀의 최적화를 높이기 위해 단기적으로 개인이 겪는 업무적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업무마저 복장과 빈백 소파처럼 자유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입사 첫날부터 아무도 나에게 상세한 업무 지시를 하지 않는 그 자체는 나를 더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대개 직장인은 ‘이 일을 완료하면 당신의 성과’임이 명확한 범위로 주어질 때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일만 완료하면 내 성과로 인정되고 당당한 칼퇴도 가능한데 말이다.
그러나 자율성을 강조하는 조직은 인재가 스스로 문제를 찾기를 바란다. 타인의 구속 없이 나를 통제하여 조직을 변화시킬 만한 일을 찾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럽기에 애초에 가졌던 자유로운 스타트업의 환상은 빠르게 사라져간다. 자유로운 업무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업무 할당이 내려오기를 고대하다가 그만 보여주기식 성과 내기에 급급해지게 된다. 스타트업처럼 작은 조직에서도 ‘월급 루팡’이 하나둘 생겨나는 이유다.
자유와 자율의 위험한 선타기는 사내 소통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평적인 소통 문화는 겉보기에 자유로워보이지만 사실은 꽤나 잔인하다. 연차, 직무, 직급을 망라한 채 수평선상에서 논의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개인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굉장한 책임이 주어진다. 언제든 대표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고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도 수많은 도전이 돌아온다.
과연 왜 그 의견을 우선순위에 올려야 하는지, 합리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부작용은 없을지와 같은 질문을 되받다보면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누구 동료와 더 친하다고 해서 내 의견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말하래서 내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비수처럼 꽂히는 질문에 점점 의견 내기를 회피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최악의 부작용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다른 동료들에게 상사 뒷담화나 사내 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다.
조직을 알면 자율이 보인다
이렇게 스타트업에서 자유롭게 혹은 자율적으로 일하는 두 유형을 살펴보니 어떠한가? 자유로운 분위기에 감춰진 자율적 업무 문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기대한 회사의 이상향과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 간 괴리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물론 처음부터 낯선 환경과 문화를 완벽하게 적응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회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제 갓 입사한 동료를 섣불리 평가하여 잘못을 판단하는 조직은 비판 받기에 마땅하다. 개인이 자유와 자율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때 주변 동료가 그에게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더욱 안정적으로 방향을 잡아주는 문화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이왕 험난한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인 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에게 조직을 천천히 관찰부터 해보길 추천한다. 조금씩 조직문화를 보는 시야를 넓히다 보면 왜 이들은 이토록 치열하게 논쟁하고 스스로의 통제를 요구하는지, 그것이 곧 조직의 생존이자 성장 전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내가 이 조직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환경을 모두 누리면서 말이다. 자유로움의 탈을 쓴 채 극도로 자기 통제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의 문화, 실은 무섭지 않은가? 편안한 사무실 소파에 콩깍지가 씌어 자율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황조은 | 힐링페이퍼(강남언니) 커뮤니케이션 리더
<그 회사의 브랜딩> 저자
전 카카오벤처스 PR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