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노(No) 재팬’이 소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옅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 맥주와 의류, 자동차 등 관련 소비재 실적이 두드러지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여행 수요가 폭증했고, 문화계에선 완결 26년 만에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맥주 수입 200만불 회복…3년 6개월 만에 최대
일본 맥주 수입액이 200만달러대를 회복했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2019년 7월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나서면서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인 후 최대치다. 다만 일본 맥주 수입 규모는 일본이 보복성 규제에 나선 2019년 7월(434만2000달러) 당시 수준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7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0만4000달러(약 2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4.9% 뛰었다. 3년 6개월 만에 최대치다.
이는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2019년 7월 이후 3년6개월 만의 최대다.
2019년 6월 790만달러를 웃돌던 일본 맥주 수입액은 같은해 7월 일본 정부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한국 수출 규제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노(No) 재팬’이 불기 시작하면서 고꾸라졌다. 같은해 8월에는 22만3000달러(약 3억원), 9월에는 6000달러(약 800만원)까지 떨어졌다.
국내에서 일본 먹거리를 비롯한 소비재, 자동차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면서 과거 수입 맥주 1위를 달리던 일본 맥주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불매 운동이 약화돼 최근 일본 맥주 수입액은 회복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일본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처음으로 100만달러 선을 회복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200만달러 선을 넘어선 것. 지난해 연간 수입액도 전년보다 110.7% 늘어난 1448만4000달러(약 188억원)로 집계됐다.
맥주 뿐 아니라 차·패션·여행도 '회복'
일본 맥주뿐 아니라 패션, 자동차 등 일본 불매운동 여파를 겪은 소비재 수요도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일례로 일본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은 지난해 20%대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에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2022회계연도(2021년 9월~2022년 8월) 매출은 7042억원으로 직전 회계연도(5824억원)보다 20.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148억원으로 전년(529억원)보다 116.8% 뛰었다. 에프알엘코리아는 유니클로 일본 본사 패스트리테일링(지분율 51%)과 롯데쇼핑(49%)의 합작법인이다.
지난달 수입 자동차 판매량에서도 일본차가 돋보이는 성적을 냈다. 특히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고급 세단 '렉서스 ES300h'의 경우 벤츠 E클래스를 제치고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2위에 올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 대수는 렉서스와 토요타가 각각 1344대, 695대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149% 뛰었다. 이에 따라 렉서스는 4위, 도요타는 7위를 기록했다. 국가별 판매량을 봐도 유럽 브랜드 판매가 1만7890대(점유율 82.7%)로 1위이고, 일본 브랜드가 2200대 팔려 2위(10.2%)를 차지했다.
문화계에서는 1월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00만명이 넘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5일 누적 관람객 수 381만8000여명을 기록하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올랐다. 서울과 대구 등에서 팝업매장을 연 슬램덩크는 굿즈(상품)를 구하려는 소비자들이 밤샘 대기를 해 유통가에서도 화제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완화 이후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 수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국경을 닫은 일본 정부가 관광객을 다시 받은 지난해 10월 약 12만3000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찾았고, 지난달에는 방일 관광객이 56만5000명을 넘겼다. 이는 일본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37.7%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교적 갈등으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실질적인 효과에는 의구심이 있다. 실질적인 피해를 국내 소상공인 등이 입을 수 있는 만큼 소비자가 불매운동에 따를 때에는 보다 면밀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