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확정 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 관계가 4년5개월 만에 우리 정부의 해법 발표로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양국 정부가 수출규제 해제를 위한 협의를 시작한 데 이어 정상회담까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해법 발표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일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 중심으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의 자발적 기여를 바탕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금으로 지급하는 안이다. 포스코 등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이 우선 기부금을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도 우리 정부의 발표 직후 약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는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역시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 질의에서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양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대법원 판결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한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수출규제에 따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일시 중단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양국 정부가 한·일 간 경제 현안이던 수출규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한 것에 크게 환영한다”고 성명을 냈다.
미국도 한·일 정부의 조치를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간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장식했다”며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과 일본 국민의 미래를 위해 중대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은 정부 해법 발표에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김인엽/오형주/김소현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