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가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 의결권을 대신 위임받아줄 대행사 선정을 23일 마쳤다. 대행사 한 곳을 고른 하이브와 달리 SM엔터는 무려 여섯 곳의 대행업체를 선정했다. SM엔터가 뽑은 대행사 중엔 지난해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편에 섰던 A사도 포함됐다. 업계 관계자는 “한 기업이 대행사 여섯 곳을 선정한 건 이례적”이라며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들로선 그만큼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잡는 게 중요해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이 강해지고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이 늘면서 의결권 수거 대행업계가 활황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주총에서 회사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최대주주 측에서 일감을 맡기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최대주주와 표 대결을 벌이려는 곳에서도 많이 의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을 겪는 대기업을 위해 소액주주 의결권을 모아오면 수수료로 수십억원을 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많을수록 수수료 늘어
의결권 위임 대행사 중 선두 업체는 업력 20년차 로코모티브다. 전국에 60개 거점을 두고 있고 주총 시즌엔 500여 명이 움직인다. 작년 SM엔터, 한솔홀딩스, 케이프투자증권의 최대주주 측을 대행해 소액주주 의결권을 받았다.로코모티브 외에 비사이드코리아(SM엔터·KT&G), 팀스(한진칼·포스코엠텍), 리앤제이마커드아시아(AJ렌터카·중앙리빙테크), 씨씨케이(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셀트리온제약) 등도 이름이 알려진 업체다. 이들 상위업체가 주로 대기업의 일감을 받고 나머지 군소 업체들이 중소 코스닥 상장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의결권 수거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태동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업체 10여 곳이 영업했는데, 현재 50여 곳으로 늘었다. 시장 규모도 커졌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소액주주 수 증가세로 가늠해 볼 때 최근 2~3년간 업계 전체 매출은 적어도 배 이상으로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618만 명이던 개인투자자는 2021년 1384만 명으로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면서 소액주주가 크게 늘었다”며 “내부 인력만으로 의결권을 수거하기 어려운 상장사들이 안건이 부결될까 우려해 앞다퉈 찾아온다”고 전했다.
의결권 수거 대행업체는 통상적으로 주주명부에 있는 이름과 주소를 보고 직접 찾아가 의결권을 받아온다. 직원만으로 일손이 부족하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한다. 대행 수수료는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경영권 분쟁을 겪는 경우엔 수십억원까지 올라간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대행사 관계자는 “소액주주 비중이 높고 이들의 지리적 분산도가 클수록 대행료가 올라간다”며 “주가 하락폭이 크고 배당 방침이 약할 경우, 감사 선임 안건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3% 룰과 섀도보팅 폐지도 영향
이들 업체가 호황을 맞은 데는 섀도보팅 폐지와 ‘3% 룰’도 영향을 미쳤다. 상법상 주총에서 기본적인 안건을 결의하려면 출석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감사 선임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이 적용된다.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찬반 비율대로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섀도보팅 제도가 2017년 폐지되면서 의결정족수 확보 부담도 커졌다.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의결권 수거 대행 시장은 더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 행동주의 펀드는 배당 확대와 유휴 자산 매각 등을 주로 요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며 최대주주를 압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행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표심을 잡기 위한 이색 진풍경도 벌어진다. 작년 SM엔터는 소속 아티스트인 에스파 멤버 카리나의 친필 사인을 배포했다. KCGI와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한진칼은 대행 보수에서 일부를 떼 주주들에게 선물을 돌렸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