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완전히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미래로 가는 길’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겠습니다. 미래는 밝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올린 트윗은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머스크는 내달 1일 열리는 ‘투자자의 날(Investor day)’에 테슬라의 장기 청사진이자 본인의 비전을 담은 마스터플랜을 공개합니다. 테슬라 마스터플랜은 2006년, 2016년 발표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머스크의 트윗은 현재까지 조회 2164만건, 좋아요 15만건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언론 및 테슬라 팬들은 마스터플랜3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다양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머스크가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언급했던 ‘반값 테슬라 생산 플랫폼’을 비롯해 △신규 기가팩토리 △에너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차세대 모빌리티 등의 새 비전이 거론됩니다.
CEO가 회사의 장기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머스크에겐 흡사 연예인처럼 열광적 반응이 뒤따르는 걸까요. 그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전 세계, 특히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지닌 경영자입니다. 『테슬라 모터스』의 저자 찰스 모리스는 그를 가리켜 “주문 제작된 듯한 미국의 영웅”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머스크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목표와 1995년 첫 창업 후 평생을 고군분투했던 사명(使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이 서른에 이미 억만장자
머스크는 10대 시절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실존주의 철학책을 독파했습니다. 2013년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던 시기”라며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결국 낙관주의가 세상을 이끈다고 믿었습니다. 소년 머스크가 가장 좋아한 책은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파운데이션』입니다. 이때부터 머스크는 인류의 긍정적 미래를 위해선 ‘우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꿈꿨습니다. (권종원 『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성인이 된 머스크는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연달아 창업에 성공하고 1억6500만달러(약 2130억원)를 손에 쥡니다. 그의 나이 31세. 남들은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이때 다 벌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전 세계 62대뿐인 100만달러(약 13억원)짜리 ‘맥라렌 F1’ 슈퍼카를 뽑고 밤엔 로스앤젤레스(LA) 부촌 벨에어 저택에서 호화파티를 했지만 금세 시들해졌습니다.
‘청년 억만장자’ 머스크는 이때부터 두 가지 미션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선 화성에 정착지를 건설하고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합니다. 다음으로 인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최대한 오래가게 합니다. 이를 위해선 기후변화의 위협을 줄여야 합니다.
머스크는 2002년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2004년 전기차 기업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1971년생, ‘20세기 소년’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당시 주변에선 ‘실리콘밸리 벼락부자’가 돈 장난을 한다고 수군댔습니다.
마스터플랜1, 야망의 실현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테슬라모터스(테슬라 초기 사명)의 초기 제품은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지만 장기 계획은 저렴한 가격의 가족용 자동차를 포함해 광범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2006년 7월. 테슬라는 2인승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정식 공개합니다. 전시된 모델은 시제품 2개였습니다. 당시 테슬라는 언론을 타고 약간 이름이 알려진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직원은 고작 100명. 그동안 제작한 로드스터는 20여대에 불과했습니다. 양산은 고사하고, 사실상 수작업(?)으로 차를 만든 셈입니다. 로드스터는 2009년에 들어서야 500대 생산합니다. 그 누구도 미래의 테슬라가 GM이나 포드 같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입니다.
- 2006년 8월 2일, 『테슬라모터스 비밀 마스터플랜』 중
로드스터 공개 후에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머스크는 첫 번째 마스터플랜을 올립니다(이면엔 당시 CEO였던 마틴 에버하드를 견제하려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는 A4 세 쪽 분량의 글 말미에 다음의 네 개 요약을 덧붙였습니다. 이 로드맵은 현재까지도 테슬라 사업 전략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1) 스포츠카를 만든다
(2) 그 돈으로 저렴한 차를 만든다
(3) 그 돈으로 훨씬 더 저렴한 차를 만든다
(4) ‘무배출 발전’ 옵션도 제공한다
머스크는 이미 2006년부터 전기차 대량 생산을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이끌겠다는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테슬라 직원 중에선 그 전략이 실현될 만큼 회사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에드워드 니더마이어 『루디크러스』).
그러나 머스크의 호언장담은 모두 실현됩니다. 럭셔리카를 내세워 투자받았고, 그 돈으로 고급 전기차 모델S와 모델X에 이어 대중차 모델3와 모델Y가 모두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2016년엔 태양광업체 솔라시티를 인수해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도 진출합니다.
마스터플랜2, 논란의 자율주행
2016년 3월. 테슬라는 준중형 전기 세단 모델3를 공개합니다. 가격은 3만5000달러. 신차 발표 하루 만에 11만5000명이 예약금 1000달러를 걸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고무됐던 걸까요. 그해 7월 머스크는 10년 만에 두 번째 마스터플랜을 홈페이지에 올립니다.<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미래 어느 시점에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달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석 연료가 고갈되고 문명은 붕괴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1) 통합된 에너지저장시스템(ESS)과 솔라루프
- 2016년 7월 20일, 『마스터플랜, 파트2』 중
(2) 세단과 SUV를 넘어 전기차 제품군의 확장
(3) 수동운전보다 10배 안전한 자율주행 개발
(4) 차량을 쓰지 않을 때 수익 창출
2023년 현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끄덕일 만한 로드맵입니다. 그러나 당시 대중에겐 전기차는 고사하고, 자율주행도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게다가 4번 비전은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한 차량 공유, 즉 로보택시를 뜻합니다. 차가 스스로 움직인다니요.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자 즉각 안전불감 및 사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2016년 5월 모델S가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 중 충돌로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사고는 당시 미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테슬라를 겨냥한 비판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머스크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틈날 때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에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완전자율주행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합니다. 테슬라는 2021년 안전 보고서를 통해 오토파일럿 기능 사용 시 일반 차량보다 사고 확률이 10배 낮아진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최신판 FSD베타는 현재 북미에서 36만명이 이용 중입니다.
마스터플랜2를 정리하면, 머스크는 1번과 2번을 완수해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ESS 메가팩 공장을 건립했고 에너지 사업은 날로 성장 중입니다. 세미트럭과 사이버트럭이 곧 양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3번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기술적으로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보입니다. 4번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테슬라 주가는 플랜2 발표 후 6년여간 9배 상승했습니다.
영원히 꿈꾸는 소년
머스크의 삶을 돌이켜보면, 마치 게임 속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내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본인을 한계 상황에 몰아넣습니다. 휴일도 없이 하루 17시간을 근무하고, 직원에게도 더 열심히 탁월하게 하라고 압박합니다. 이 남자에게 주변의 조롱과 비난은 오히려 이를 악물게 만드는 채찍과도 같았습니다.머스크가 화성 탐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그는 인류가 1970년대 아폴로 계획(유인 달 탐사) 이후 여전히 저궤도에만 머물러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리프트 오프』 저자 에릭 버거는 머스크와 인터뷰에서 “스페이스X 설립 후 19년이 흘렀는데 화성엔 여전히 가지 못했다”고 묻습니다. 머스크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그렇죠. 화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게 환장할 만큼 화가 납니다” 그는 스페이스X의 거대한 스타십 로켓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저 물건이, 아니면 비슷한 뭔가가 45억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을 다른 행성으로 데려갈 겁니다. 아마 그렇게 될 것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