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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호의 AI 창작시대 대응법] '창작 AI' 지식재산권 논란, 창의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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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징어 게임’이 사회·문화적 현상이 됐던 것처럼 요즘 가장 흥미로운 화제는 오픈AI의 챗GPT다. 지금껏 컴퓨터 프로그램, 그림, 음악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이 의외의 성과를 내면서 간간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챗GPT는 사람들이 AI에 대해 갖는 시선을 바꿔놓을 기세다. 누군가에게는 가능성과 편리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려와 위기로 여겨지는 챗GPT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 일상에서 글을 활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뛰어나고, 그동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던 대화형 AI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전유물’ 머지않아 버려야 할 수도
작년 8월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AI로 그린 ‘우주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AI가 단순한 흥밋거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진지한 예술영역에 침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왔다. 인간 심사자의 눈에도 해당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면, 예술 활동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머지않아 선입관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창작해내는 AI에 과학자들은 ‘생성 AI(generative AI)’라는 이름을 붙였다. 빌 게이츠는 이런 생성 AI가 컴퓨터나 인터넷만큼이나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것처럼 우리는 결국 생성 AI가 제공하는 여러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AI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을까?

여러 우려 섞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AI 적응력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여러 지표 중 각국 정부의 AI 활용 대비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10위권에 진입해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AI가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은 매우 자명하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전망에 따르면 2030년을 기준으로 AI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중국이 무려 26.1%, 북미가 14.5%, 남유럽이 11.5%이고,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선진국이 10.4%, 북유럽이 9.9% 등이라고 한다. 이런 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 AI가 가져오는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각국이 사활을 걸고 이뤄야 할 과제가 됐다.

당연히 지금의 AI 기술 발전은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것으로 합리적인 제도와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생성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새롭고 늘 발전하는 만큼 그 기준 역시 충분히 창의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각계각층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는데 법학자, 그중에서도 지식재산권법을 연구하는 학자의 시선으로 생성 AI의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지식재산 범위 지속 확대… AI의 창작물은
지난해 생성 AI로 작성된 그래픽노블 ‘여명의 자랴(Zarya of the Dawn)’가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을 받아 큰 논란이 됐다.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작품의 저자는 AI인가, 인간인가, 그것도 아니면 AI와 인간의 공동 창작인가? 챗GPT의 도움으로 글을 쓴 이들조차도 다른 사람이 그 글을 베껴 쓴다면 저작권을 주장할지 모를 일이다.

지식재산권법은 지식재산을 보호하면서도 지식재산의 합리적 이용 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 영역이다. 지식재산권법의 출발이자 대전제는 무엇이 지식재산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특허는 기술을, 저작권은 문학과 예술을 보호한다. 기술과 예술의 보호는 그것이 가치를 지니고 사회에 유익하다는 점에서, 또 타인이 다른 사람의 기술과 작품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된다.

비슷한 논리는 생성 AI가 만든 결과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저작권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창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됐다. 하지만 위 사건에서처럼 인간과 AI의 협력은 더욱 심화할 수 있는데, 인간이 창작에 기여한다면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있다. 문제는 생성 AI가 고도화하면서 인간이 담당하던 일을 ‘대체’할 때 발생한다. 생성 AI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가 인간의 성과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면, 우리는 생성 AI가 만든 결과물의 보호 제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논의가 꺼려진다면, 최소한 인간의 개성과 창의력을 보호한다는 저작권법의 목표에 대한 의구심에 답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지식재산으로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해 왔다. 최초의 저작권이 1710년 영국에서 태동하기까지 유구한 세월이 필요했다. 당시 보호 대상은 문자로 된 인쇄물에 국한됐는데, 이후 판화가 저작권으로 보호되기까지는 2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쇄물이 복제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화로 새겨진 그림 역시 재생산될 수 있다는 논리가 영국 의회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저작권 보호는 조각, 음악, 회화 작품 전반으로 확대됐고 이와 같은 경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보호받던 것과 유사성을 찾는 작업이 쉼 없이 반복된 셈이다.

물론 이 같은 명분이 지금까지의 지식재산권제도를 지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2022년 국제지식재산 인덱스에서 한국이 12위에 올랐다. 지식재산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나타내는 이 지표에서 국가별 순위는 흥미롭게도 위에서 본 AI 관련 통계와 비슷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들 국가 대부분이 선진국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생각한다면 선진국은 생성 AI가 만든 결과물을 지식재산으로 잘 보호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과연 이 단순한 추론은 타당한 것일까?

유럽연합(EU)의 여러 구성국과 미국은 선진국에 속한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지식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던 EU와 미국 사이에서 최근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은 플랫폼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기술기업이 대거 포진한 곳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들이 세계시장에서 자유로운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들이 저작권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EU에는 이렇다 할 플랫폼 기업이 없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 강화와 더불어 저작권 보호를 강조하고, 플랫폼이 엄격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생성 AI 결과물 보호 여부 논란 커지는데…
현재 생성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AI 개발자 사이에서 AI 생성물 시장이 형성됐음에도 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면서 판로가 막힌다는 성토가 나온다. 이와 달리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깃허브의 AI 코딩 도구인 ‘코파일럿’이 자신들의 코드를 베끼면서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독일 언론사들이 챗GPT에 기사 사용료를 요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비롯한 기업들이 AI 개발뿐 아니라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에 열을 올리면서 생성 AI의 이해당사자 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고도로 산업화되고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18세기 영국에서와 같이 명분만으로 새로운 보호제도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도 미국이 자국의 상황을 통찰하고, 이에 따라 지식재산의 보호 수준과 방법을 맞춰가듯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법제도를 마련해 산업에 활력을 줄 필요가 있다.

2016년 이세돌과 대국을 펼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그간의 인간 대국 데이터를 학습했다면, 그로부터 1년 뒤 커제와 맞붙은 알파고는 자신과의 대국을 통해 스스로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해냈다. 알파고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AI 발전 초기 단계에서는 외부 데이터의 활용이 중요하지만, 성숙기 이상 단계에 접어들면 생성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보호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물론 보호가 중요하다고 해서 너무 강한 보호만 추구하다 보면 AI 세계에서도 승자독식 현상이 일어나면서 기존 글로벌 정보기술 선두주자만을 위한 제도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지나치게 이용 활성화에 치중하다 보면 무임승차 현상이 일어남에 따라 생성 AI 사이에서 차별점이 사라져 관련 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
정부 기민한 리더십과 유연한 대응 필요
생성 AI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전개될 것이다. 누구 한쪽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일방이 정답을 제시할 수 없고, 어떤 의사결정을 하든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기민한 리더십과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플랫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편다면 창작자들은 필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유튜브에 저작자 허락 없이 올라온 영상을 본 사람이 다시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영상을 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정부 역시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플랫폼을 보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국은 생성 AI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AI산업이 점차 성숙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보호 강화와 책임 완화라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 역시 AI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대응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토대로 우선 생성 AI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절충안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기 책임하에 정책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적이고 기민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일단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변의 진리가 될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제도를 바꾸고, 시대 변화에 적응해가는 것 역시 국가기관이 담당해야 할 일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법원과 그 안에서 일하는 법관이 단순히 법을 해석해 적용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최근 법원에 사실상 구체적인 정책 결정을 위임하는 사례가 지식재산권법 영역에서 자주 목격된다. 법원 역시 학계 및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전문성을 갖추고, 정책적 결정을 하는 데 책임감 있게 동참해야 한다.

■ 이일호 교수는

1981년생으로 연세대에서 법학학사와 석사,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식재산 분야 법학자로 연세대 법학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법, 지식재산권법, 국제지식재산권법 등을 강의하고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한국 지식재산권의 발전상을 국외에 알리는 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한국 챕터를 저술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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