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전환율에 월세 천차만별
21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 주변 공인중개업소에선 급락한 전셋값을 근거로 임대차 보증금과 월세를 낮추려는 세입자와 오른 금리를 들어 월세를 낮출 수 없다는 집주인 사이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2021년 6월=100)는 101.52로 고점인 작년 10월 대비 하락폭이 1%에 그쳤다. 하지만 현장에선 보증금을 활용해 실질 부담을 낮춘 계약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센트라스 전용면적 84㎡의 월세 시세는 보증금 1억원에 300만~350만원으로 금리가 오르기 전인 재작년 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10억원 안팎이던 전셋값은 7억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셋값이 내렸는데 월세는 왜 안 내리냐는 질문에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예전엔 전·월세 전환율이 3%대였는데 요즘은 오른 금리를 반영해 4%대로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거래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달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90만원, 보증금 4억원에 월세 170만원 등 완전 월세나 전세로 환산했을 때 시세보다 낮은 계약이 상당수 이뤄졌다.
비슷한 생활권에서 집값이 비싼 아파트와 낮은 단지 사이의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매매 시세가 17억~18억원가량인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가 이달 보증금 6억원, 월세 115만원에 임대차 계약이 이뤄졌다. 매매 시세가 19억~20억원인 잠실동 리센츠에선 보증금 7억원에 월세 70만원짜리 계약이 나왔다. 전환율을 4%로 계산하면 헬리오시티는 월 315만원, 리센츠는 303만원 정도를 부담하는 셈이다. 월세의 기준인 전셋값이 널뛰기하는 탓에 이 같은 혼란이 초래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과 이달 이뤄진 잠실 리센츠 전용 84㎡ 전세 계약의 경우 보증금이 최소 8억원에서 최대 12억5000만원으로 차이가 4억5000만원에 달한다.
월세 계산의 근거도 천차만별이다. 중개업소에 따라 어떤 곳은 급매물을 제외하고 전환율 3%로 월세를 계산하고, 다른 곳에선 급전세 시세를 기준으로 전환율 4%를 적용하기도 한다.
◆전세 시장 안정돼야 혼란 잦아들 듯
급락한 전세 가격을 반영해 같은 단지 전용 114㎡ 아파트가 전용 84㎡보다 싸게 계약된 사례도 있다. 성동구 행당한진타운 전용 114㎡(44평)는 지난달 보증금 4억원, 월세 40만원에 임대됐다. 전환율 4%를 적용, 보증금 4억원에 월세 40만원은 완전 월세로 환산하면 월 173만원 정도다. 같은 달 전용 84㎡가 보증금 5000만원·월세 240만원에, 이달엔 보증금 1억5000만원·월세 220만원에 임대차 계약이 이뤄진 것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다만 21세기공인 관계자는 “싸게 계약된 물건이 저층 물건이란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전했다.전문가들은 전셋값이 안정될 때까지는 이 같은 혼조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월세는 생활비에 포함되는 성격이 있어 한번 올라가면 잘 내려가지 않는다”면서도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 결국은 월세도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지금은 그 과정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현일/박시온/안정훈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