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초 알고 지내던 공인중개사로부터 오피스텔 투자 권유를 받았다. 시장가보다 절반 가까이 싼 값에 나왔다는 말에 A씨는 2억원가량을 들여 오피스텔을 샀다. 공인중개사는 "월 80만 원씩 월세를 받을 수 있다. B 아나운서가 만든 법인에서 내놓은 물건”이라고 했다.
다달이 월세를 받던 중 몇 달이 지나 전화 한통을 받은 A씨는 깜짝 놀랐다. “전세를 빼야하니 전세금을 돌려달라”는 세입자의 전화를 받고서다. 월세를 놓은 줄 알았던 김씨는 매입 전부터 오피스텔에 전세자가 살았고, 전세보증금을 자신이 돌려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상 전세금까지 떠안아 1.5배 이상 비싸게 산 것이었다. 사기였다.
‘깡통전세’를 이용해 수백억원대의 부동산 사기 행각을 벌인 전직 지역 방송사 앵커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대전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유정호)는 전세 세입자가 있는 오피스텔을 월세 물건이라고 속여 파는 방식으로 163명에게 325억원 상당을 편취한 대전지역 전 방송사 앵커 B씨(54)와 아내 C씨(54), 전직 방송작가 D씨(41)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범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 등은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전세보증금과 매매가가 비슷한 이른바 ‘깡통전세’ 오피스텔을 대량 매입해 전세자가 있는 사실을 숨기고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매물로 속여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사기 피해자는 163명, 피해 규모는 총 325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가짜 임차인을 내세워 월세 계약서를 위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중에는 19억원을 투자한 피해자도 있었다.
이들은 부동산전문 법인을 만들어 대표와 이사 등을 맡은 뒤 서울·경기 등 공인중개사를 동원해 전세 및 매입가가 같거나 500만~600만원밖에 차이가 안 나는 오피스텔을 대량 매입했다. 이를 대전 등 부동산중개업소 3~4곳에 내놓고 손님이 찾아오면 “현재 월세 임차인이 살고 있는데, 지금 사면 절반 정도 싼 값에 매입할 수 있다”고 속였다.
이 과정에서 공인중개사들은 “A 아나운서 등이 설립한 법인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니까 안심하라”고 꼬드겼다. 피해자들은 지역 방송에서 자주 보는 유명인들이 판다는 업자의 말과 A씨를 봤다는 목격담에 의심 없이 오피스텔을 매입했다.
매매 수수료가 한 건당 최대 4500만원까지 지불하자 중개업자들이 매매를 성사시키기 위해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 “이 물건 금세 팔린다”고 매입자의 조바심을 부추긴 중개사들은 꼬리가 잡히자 “우리도 몰랐다. 속았다”고 변명했다. 재판이 시작된 아나운서의 전처 B씨는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지만 공범들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그들과 함께 재판을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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