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노동 시장의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고용인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피고용인은 일할 곳이 없다고 난리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일자리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다. ‘대퇴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젊은 세대 직장인들에게 일과 직장은 더 이상 삶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2020년 3월부터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연 근무와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이 반강제적으로 도입된 후 노동 시장의 변화가 가속화됐다.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지탱해온 일의 세계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세상은 무너지고 있는데,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Die Welt geht unter, und ich muss trotzdem arbeiten?)>는 최근 독일에서 출간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직장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2021년까지 SNS 링크트인의 독일 책임자였지만, 대퇴사의 물결에 편승해 현재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사라 베버는 기발한 제목의 책을 통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일의 세계를 소개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과 홍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튀르키예 지진 등 하루가 멀다고 끔찍한 재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재난이 닥쳐올지 모르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구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재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너무나 태연하게 앉아 늘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저자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보자고 제안한다. ‘과연 이렇게 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리를 병들게 하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 ‘주당 40시간 근무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변화는 진작부터 시작됐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일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은 바뀌고 있었고, 바이러스가 우리가 일하는 환경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긴 했지만, 이미 뭔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람이든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이든 상황은 마찬가지다. 점점 더 적은 수의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임금은 계속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언제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 모두를 위해 ‘정의’ ‘지속가능성’ ‘인간 중심’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일의 세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보고, 일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을 펼쳐놓는다. 우리 모두 더 적게 일할 수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면? 일이 평등해질 수 있다면? 우리가 더 잘 체계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면? 기후 변화를 고려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책은 일의 세계에 대한 혁신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일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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