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저녁에 찾아간 서울 서교동의 실내 농구장 ‘인아우트’. 165㎡ 남짓한 공간에 15m×7m 크기로 코트를 만든 이곳엔 이내 강사의 구령 소리와 함께 농구공 10여 개가 일정한 리듬으로 원목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찼다.
홍대서 3년째 생존한 ‘실내 농구장’
평일 저녁에 열린 ‘성인반 농구 클래스’의 참가자 모두 여성. 대부분 직장인이나 대학생인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길거리와 TV 화면에서 봤던 농구를 제대로 배워보려는 마음. 그리고 추억의 만화 ‘슬램덩크’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이다. 슬램덩크를 만화책으로 열 번도 더 읽었다는 30대 직장인 김미나 씨(가명)는 이렇게 말했다.“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나오면서 남자들이 군대 얘기마냥 슬램덩크를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얘기하더라고요. 저도 열 번은 넘게 읽은 책인데…. 제 주변에도 저 같은 사람이 많고요. 슬램덩크를 좋아한 우리 모두 채소연이 좋아서 슬램덩크를 읽은 건 아니잖아요. 저도 송태섭이나 서태웅이 좋았거든요. 공이 림을 가르는 희열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이참에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에요.”
옆에서 몸을 풀고 있던 20대 초반의 대학생 새내기 최연수씨(가명)도 비슷한 이유에서 농구공을 들었다. 그는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최근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인해 다시 ‘붐’이 이는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큰마음 먹고 결제했다”며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한 것도 있다. 이왕이면 재미있게 살을 빼고 싶었다”고 했다.
2년 전부터 ‘여성볼러’ 반응 뜨거워
인아우트가 있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은 이른바 ‘홍대 상권’의 핵심 구역 중 하나다. 홍대클럽 거리와 카페 거리가 서교동 안에 모여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권리금과 월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 간판이 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3년째 ‘생존 싸움’을 벌이며 실내 농구장을 운영해왔다는 김종수 인아우트 대표는 “개업과 함께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여러 번 폐업까지 고려할 상황이었다”고 했다.그런 인아우트가 실제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던 건 ‘여성 볼러(baller)’들의 지분이 컸다고. 김 대표는 “여성 농구 인구는 원래부터 있었다.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것일 뿐”이라고 했다.
2년 전부터 농구 레슨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처음엔 농구 동아리에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내 연습장을 운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회원이 모였고,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최근에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수강생이 몰려 여성반을 증설해야 했다. 1주일에 진행하는 6개 수업 중 5개(입문반, 초급반, 중급반)가 여성 전용 수업이고 이미 3개월 치까지 예약이 꽉 차서 대기를 받을 정도다. 김 대표는 “보통은 한 달 단위로 레슨을 구매하는데 재수강률이 매우 높다”며 “3개월 이상 다니는 분이 대부분이고, 1년 넘게 배우는 분도 종종 있다”고 했다.
패스부터 3대3 경기까지 체계적 레슨
여성 실내 농구 레슨의 커리큘럼은 남성반만큼이나 전문적이다. 2시간에 걸쳐 열리는 초급반 수업은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패스, 원바운드 패스, 드리블 패스, 슛 등을 배운다. 말미에는 ‘픽앤롤’(상대가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스크린 동작을 통해 매치 상대를 바꿔 ‘미스매치’를 유발하는 전술) 같은 기본 전술 등을 익힌다. 이어 배운 것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3 대 3 경기까지 진행한다. 중급반으로 넘어가면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포워드, 센터 등으로 포지션을 나눠 이에 맞는 전술 등을 훈련한다. 김 대표는 “중급반의 경우 양손 드리블을 편하게 하고 레이업이나 미들슛은 물론 고급 전술 이해도까지 뛰어난 분도 있다”며 “웬만한 성인 남성도 따라 하기 어려운 드리블 스킬까지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또 그는 “최근에는 농구 레슨을 원하는 남성이 급격히 늘어나 클래스 신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숨은 여성 농구인 인구 많아”
여성들이 인아우트 같은 소규모 실내 농구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까지 여성이 농구를 즐기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까지 농구는 체육관을 대관해 동호회 단위로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대관료로 들어가는 회비를 낼 의지가 있다 해도 이를 찾을 ‘인맥’이 있어야 했고, 농구 실력도 어느 정도 갖춰야 했다. 또 다른 방법은 한강 공원 등을 찾아가 ‘조인’하는 건데, 이제 갓 드리블을 시작한 ‘여성 농구인’에겐 엄두도 못 낼 얘기였다.창업 전 스포츠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김 대표는 슬램덩크를 남자보다 많이 읽고 농구를 사랑하는 ‘숨은 여성 농구인’ 인구가 많이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중반까지 ‘농구 선수 지망생’ ‘체대 입시 준비생’ 등을 위한 레슨 위주로 생겨났던 소규모 실내 농구장은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해 현재 전국적으로 10여 곳까지 늘었다.
농구 붐이 일면서 관련 사업도 진화하고 있다. 개인도 언제든지 농구를 할 수 있도록 ‘1인 대관’이 가능한 시설도 생겨나고 있다. 인아우트의 경우 최근 같은 건물 지하 1층을 추가로 임대해 ‘퍼스널 트레이닝(PT)’ 공간을 마련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고객들에게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농구 애호가들이 늘면서 농구 전문 퍼스널 트레이닝을 문의하는 회원도 늘었고, 농구 레슨을 받는 회원에겐 PT 비용을 할인해주는 연계 상품도 인기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