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水墨畵)는 ‘물의 예술’이다. 물을 잘 다스려야 수묵화를 잘 그린다. 붓에 물을 얼마나 묻히고 화선지를 어떻게 적시느냐에 따라 그림의 질감과 역동성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수묵화로 물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흑백이라 색을 쓸 수도 없고, 쉽게 번지는 먹의 특성상 물의 질감을 살려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묵 산수화(山水畵)는 물보다 산 표현에 집중한다.
홍익대를 나와 대한민국미술대전·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중견 수묵화가 문봉선(62)은 화장솔을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때까지 수묵화로 안개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물을 많이 탄 흐린 먹을 썼습니다. 아련한 느낌은 살릴 수 있지만 그림이 얼룩덜룩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15년 전 일본의 한 백화점에서 작은 솔을 보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분을 바르는 화장솔이더군요. 써 보니 생각대로 물기가 느릿하게 퍼져나가는 게 안개를 표현하기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광주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의 기획전 ‘수’에 나와 있는 문 작가의 작품 11점에는 작가가 지난 20여 년간 고민해온 ‘수묵 물 표현’의 정수가 담겨 있다. 강변과 안개 낀 산부터 보름달이 뜬 갈대숲, 파도까지 다양한 형태의 물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흔들리는 수면의 질감과 안개의 아련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수묵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산(山)이에요. 저도 예전에는 산을 많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그려도 관객이 행복해하지는 않더군요.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가 ‘채우려면 먼저 비우고, 높아지려면 스스로 낮춰야 한다’는 구절을 보고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산은 ‘나를 과시하는 그림’이니, 지친 현대인들이 좋아할 수가 없는 거였어요. 관객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주제를 찾다가 물에 천착하게 됐습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열린다. 다만 물을 주제로 한 그림은 4월 말까지만 볼 수 있다. 문 작가는 “마침 4월 7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전시 주제도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며 “4월 말까지 물 그림을 건 뒤에는 연꽃과 모란 등 다양한 주제의 한국화를 연말까지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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