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슈퍼카’라는 모호한 단어로 이들 브랜드를 하나로 묶는 것 또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슈퍼카, 럭셔리카, 하이퍼카 등 이들 브랜드를 세분화하려는 노력도 존재한다. 이들의 DNA를 얘기하기 위해 어떤 구분이 유효할까. 피는 못 속인다고, 이들의 전통은 ‘국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슈퍼카 브랜드의 국적을 따지자면 크게 영국과 이탈리아로 나뉜다. 럭셔리의 대명사 롤스로이스, 벤틀리, 맥라렌이 영국의 대표적 브랜드다. 존재감이 엄청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다.
○“영국 브랜드는 럭셔리를 안다”
“영국은 럭셔리가 뭔지 안다”는 게 롤스로이스나 벤틀리를 타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탄성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영국 브랜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이들 브랜드는 영국의 고급 테일러링(재단)을 떠올리게 한다. 자동차도 슈트를 맞추듯 제작한다. 왕실을 정점으로 한 귀족 문화가 자동차마저 고급스럽고 디테일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그중에서도 롤스로이스는 럭셔리의 ‘극단’이다. 벤틀리도 마찬가지지만 롤스로이스는 더욱 철저한 맞춤형 제작을 고집한다. 디자인은 물론 시트를 꿰맬 실의 소재, 페인트의 종류, 광택의 정도까지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디테일을 구매자가 주문할 수 있다. 정우성 더파크 대표는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한 대를 사는 게 아니라 작품을 구입한다는 개념으로 보는 게 맞다”며 “글로벌 차원의 부자들도 롤스로이스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에 비해서는 조금 더 ‘위트’가 있는 브랜드로 꼽힌다. 1920년대 벤틀리와 그 브랜드의 철학을 사랑한 레이서의 모임은 ‘벤틀리 보이즈(Bentley Boys)’였다. 보이즈라는 이름에서 벌써 롤스로이스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벤틀리는 레이싱 DNA도 갖췄다. 하지만 럭셔리에선 뒤지지 않는다. 일단 영국 여왕이 탔던 차가 벤틀리다. 수백 년 된 나무를 패널로 쓰기도 하고, 운석에서 떨어져 나온 돌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 브랜드지만 맥라렌은 조금 예외다. 럭셔리보다는 F1 레이싱카로서의 DNA가 두드러진다. 정 대표는 “맥라렌을 운전할 때면 맨몸으로 싸우는 기분”이라고 했다. 운전자가 못하는 걸 알아서 해준다기보다는, 운전자가 차를 주도적으로 컨트롤하게 한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슈퍼카는 캐릭터
이탈리아 슈퍼카의 특징은 ‘개성’이다. 장인 패션의 나라여서일까. 자동차 또한 브랜드는 우아한데 성능은 광폭할 정도로 높다. 정 대표는 “내가 이해하기에 이탈리아 슈퍼카는 캐릭터와 미학적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나다”며 “확실히 성격이 강한 차들을 만든다”고 설명했다.영국 차들이 모나지 않으면서도 럭셔리를 극대화했다면 이탈리아 슈퍼카는 날 것, 생물에 가깝다. 페라리 로고에 앞발을 든 말이 새겨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페라리를 일견 봤을 땐 차별화된 우아함이 풍기는데, 디테일에 시선을 두면 형상화된 근육들이 눈에 들어온다.
람보르기니는 좀 더 직선적이다. 스포츠카 DNA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고, 남성적인 주행 질감이 비교적 더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람보르기니의 정신은 ‘의외성을 기대하라(expect the unexpected)’다. 그 정도로 ‘궁극의 드라이빙 성능’에 대한 자신감이 높다. 다만 최근 들어 나온 차종들은 운전이 조금 더 쉽고 편해졌다는 평가도 많다. 람보르기니가 우루스를, 페라리가 푸로산게를 론칭하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슈퍼카의 핵심은 ‘헤리티지’
유럽은 자동차를 그 자체로 보는 문화가 성숙해 있다. 가족 대대로 물려받으며 타는 차도 있고, 취향을 담은 소량 생산 브랜드도 발달했다. 한국에서 ‘하차감’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위계가 덜 작동한다는 뜻이다.슈퍼카 문화도 어떻게 보면 다르지 않다. 신차도 있지만 역사를 담은 수십 년 전의 슈퍼카들이 도로를 다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970년대부터 슈퍼카가 수입된 일본도 아시아에서는 ‘헤리티지 문화’가 성숙한 편이다. 슈퍼카 시장이 형성된 지 15년쯤 지난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슈퍼카를 단순히 뽐내기 위해 사는 경우는 점점 줄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단순 하차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