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전차가 선정되지 않은 것은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간 국방협력의 중요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9일 방한해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난 마수드 가라카니 노르웨이 국회의장이 언급한 발언입니다. 노르웨이는 기존 독일제 레오파르트 2A4 전차를 교체하는 신형 주력전차(MBT) 사업을 추진해왔고, 한국의 K2 흑표 전차가 레오파르트2A7과 막판까지 경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K2는 입찰 경쟁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동안 노르웨이의 대(對)독일 정치적 입장 문제란 관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르웨이의 내부 국립 연구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해산 석유 및 천연가스를 둘러싼 노르웨이-독일의 특수관계를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獨, 노르웨이 천연가스 의존↑"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인 브레이킹디펜스는 노르웨이 국제문제연구소(NUPI)의 선임 연구원 언급을 인용해 노르웨이의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의 구매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KMW(크라우스-마페이 베그만)사로부터 레오파르트 2A7주력전차 54대를 주문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이후 나온 보도입니다.매체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레오파르트 전차 선택은 천연가스를 매개로 한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NUPI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노르웨이 천연가스에 대한 독일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양자 관계(독일과 노르웨이)가 분명히 강화돼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럽으로 공급됐던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이 중단되면서 노르웨이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설명입니다. 노르웨이 통계청(SSB)이 최근 발표한 노르웨이 상품 대외무역 통계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천연가스 수출은 1조3570억 크로네로 지난해 노르웨이 수출 규모(2조6010억 크로네)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국제 천연가스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노르웨이는 지난해 사상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큰 호재이지만, 전쟁에 따른 반사이익이기에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노르웨이는 군사 지원을 위해 향후 5년간 750억 크로네(약 73억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노르웨이가 석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얻은 수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는 국제 사회의 압력도 받고 있습니다.
노르웨이가 현재 독일과 상당수의 군사협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점도 이번 결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르웨이 방위사업청과 독일 연방조달청은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와 2021년 차기 재래식 잠수함(212CD급) 조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한 잠수함을 노르웨이 네 척, 독일 두 척 등 각각 보유할 예정입니다. 올해 시제잠수함 건조도 예정돼 있습니다.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는 "노르웨이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콩스버그는 잠수함, 함정, 유도무기, 지상 장비 분야에서 독일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르웨이 총사령관 "탱크 대신 헬기·장거리 무기 수입하자"
폴란드 이후 노르웨이를 서유럽 무기 수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K2 제조사 현대로템은 향후 다른 나라의 수출 실적을 통해 만회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올해 폴란드와 K2전차 820대를 수출하는 2차계약 등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2차계약 수주금액은 1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방위산업 전문가들은 이번 수주 실패가 유럽 무기시장의 견고함을 보여준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간에 그동안 쌓아온 무기거래를 역외국가가 쉽사리 뚫기 어렵다는 점이 증명됐다는 것입니다.
또 폴란드와 노르웨이의 무기 조달 환경이 확연히 달랐던 점도 고려해야 했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NUPI는 "노르웨이군 총사령관 '에이릭 크리스토페르센'은 작년 말 노르웨이가 전차 도입을 미루고, 장거리 정밀유도 무기, 헬리콥터를 도입하는 방안을 주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국의 탱크를 공여해 안보 사정이 급했던 폴란드와 다르게, 노르웨이는 이번 독일의 신규 탱크 도입시기를 2026년으로 잡는 등 전차 도입에 여유가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군사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한국과 같은 유럽 외 국가들이 기존 방산 선진국들에 진출하려면 합작 법인 등을 활용해 현지화 전략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방산업체 라파엘이 개발한 스파이크 대전차 미사일을 독일에 있는 이스라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 대표는 "지휘자동화체계(C4I) 장비 등으로 판매 무기도 다변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차의 경우 무전기 등 지휘·통제·통신 등 자산을 수입 국가가 자국산으로 쓰는 일이 많은데, 기업들이 이같은 자산도 수출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