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 정치인들의 투자 종목을 추종 매수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정치인 ETF가 출시되려면 국회의원의 주식 보유 현황을 주기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뉴욕증시에서는 공화당 추종 펀드(KRUZ)와 민주당 추종 펀드(NANC) 거래가 각각 개시됐다. 1주당 25.05달러에 거래를 시작한 NANC의 종가는 25.47달러였다. KRUZ는 1주당 24.99달러에 거래가 시작됐다가 25.27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두 ETF의 운용사는 서버시브 캐피털 어드바이저다. 유주얼 웨일즈라는 주식정보 플랫폼을 통해 해당 상품을 출시했다. 운용 수수료는 연 0.75%로 책정됐다.
미국 주식거래금지법 상 미국 연방의회 의원들은 본인 또는 배우자가 1000달러 이상의 주식을 거래한 경우 관련 정보를 45일 이내 의회 사무처에 보고해야 하고, 의회 사무처는 해당 거래내역을 의회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두 ETF는 이렇게 공개된 종목 데이터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됐다. 티커명인 NANC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원(전 하원의장·사진 왼쪽)을, KRUZ는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을 각각 지칭한다. 두 사람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꼽힌다.
NANC는 800개에 달하는 종목으로 구성됐다. 주로 아마존, 구글 모기업 알파벳, 애플 등 기술기업 분야로 이뤄졌다. KRUZ의 포트폴리오는 500개를 조금 웃돈다. 라스베이거스 샌즈나 마젤란 미드스트림 파트너스, 쉘, 에너지 트랜스퍼 등 도박산업 및 에너지 분야가 주를 이뤘다. 이들 ETF가 투자한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공통적으로 겹치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KRUZ가 2.55%를, NANC가 7.31%를 할당했다.
이번 상품은 '정치인들이 쥐고 있는 정보가 곧 돈이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반인들은 상당수 의원들이 기업 관련 조사나 입법 등 내부 정보를 활용해 사적으로 투자 수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일반인들도 정치인들의 투자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과거 수년 간 정치인과 그의 배우자, 측근들이 주식시장에서 거둔 수익은 엄청나다"고 전했다. 일례로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남편인 폴 펠로시(사진 오른쪽)는 2021년 알파벳 주식에 대한 콜옵션(특정 가격에 살 권리)을 행사했는데, 이후 일주일 만에 미국 하원에서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반독점 법안을 공개적으로 검토했다. 당시 폴 펠로시가 콜옵션 행사를 통해 거둔 차익은 530만달러(약 67억원) 가량이다.
폴 펠로시는 또 테슬라 투자로도 막대한 수익을 거둬 논란이 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대적인 전기차 인센티브 정책을 발표하기 전인 2020년 말 테슬라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콜옵션을 산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번 ETF의 수명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미지수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의 이해충돌 논란이 계속됨에 따라 의원들의 개별 주식 소유 및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 테마주'가 주목을 받는다. 당선이 유력시 되는 정치인의 친구나 배우자와 연관된 기업의 주식에 투자자가 몰리곤 한다. 다만 정치인이 직접 투자한 종목과 연동된 ETF는 아직 없다. 국회의원의 주식보유현황을 1년에 한번(매년 3월) 재산공개 때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