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 원화 수요 외환시장으로 흡수
한국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자유변동환율제를 받아들였지만, 해외 금융사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를 막는 폐쇄적 시스템은 손대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외국 금융사가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금지해왔다. 외환시장도 국내 증시에 맞춰 오전 9시에 열고 오후 3시30분에 닫는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외환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올라갔던 경험 때문에 수십 년간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가 유지됐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런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오히려 환율 안정을 해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지금은 해외 금융사가 다음날 국내 주식 매수를 위해 야간에 원화를 환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외환시장이 닫혀 있는 데다 국내 금융사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역외시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역외시장은 달러와 원화를 주고받지 않고 선물환율 차액만 결제(NDF)하는 시장이라 투기 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환율이 요동치기 쉽다. 이는 국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왝더독’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외환시장 개장시간을 늘리고 정부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외국 금융회사(RFI)의 참여를 허용하면 역외시장의 비투기성 원화거래 수요를 외환시장으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관리관은 “다양한 목적을 가진 금융회사가 국내 외환시장에 유입되면서 역외 흐름에 따라 요동치던 환율이 안정화될 것”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의 우리 주식, 채권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돼 원화표시 자산의 매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환 변동성 더 커질 수도”
정부의 이번 조치로 국내 외환 관련 시장은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할 전망이다. 정부는 외국환거래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외환거래가 필요한 고객(기업)이 복수의 은행으로부터 호가를 받아 그중 최적 가격을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인 ‘외국환 전자중개업무(애그리게이터)’도 도입할 계획이다.외국 금융사가 자기 명의 계좌를 개설한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서도 환전할 수 있도록 ‘제3자 외환거래’도 허용한다. 지금까지는 블랙록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국내 특정 은행에 원화계좌를 두고 원화를 사고팔 때 그 은행에만 주문을 넣었지만 이제 다른 은행과도 자유롭게 외환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의 시각도 있다. 거래시간 연장으로 유동성이 적고 외환당국의 대응력이 떨어지는 밤 시간대 해외 소재 금융사가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환율이 요동치는 ‘쏠림현상’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대외 이슈에 민감한 한국 경제 특성상 외국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등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수단을 활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조미현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