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회사와 불화를 겪고 제발로 나간 경우, 사직인지 해고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해고로 판명될 경우 사업주에게는 상당한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해고가 되는 경우 해고예고 수당, 임금 등 금품 14일 내 청산 의무 등 사업주를 옭아맬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사직 여부를 판단할까.
"나가" 한마디에 기다렸던 듯 노동청 향한 직원
"나가라"는 사업주의 말에 곧바로 나가 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직원에 대해 '부당해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단독 박항렬 판사는 지난해 10월 27일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기소된 소규모 제조업체 사장 A에 대해 일부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30만원에 처했다(2022고정458).A는 광주에 소재하는 상시근로자 20명 규모의 작은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다. 회사 직원 B는 오랫동안 근무 태도 문제로 A의 지적을 받아오던 중 2021년 11월 어느 날 오전, 결국 갈등이 폭발했다. 참다못한 A는 B에게 "거기서 왜 그러고 있냐, 그럴 거면 집에 가라"는 취지로 얘기했고, B는 곧바로 "어떻게 할까요. 가라는 거에요 말라는 거에요"라고 물었다. 이에 A는 "가라고"라고 짧게 답했다.
B는 곧바로 별다른 항의 없이 회사에서 나와 출근하지 않았다. A는 '차라리 출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별다른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A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도착했다. 별 말없이 나간 B가 바로 다음 날 곧바로 중부지방 고용노동청으로 가서 △근로시간 위반 △근로계약서 미작성 △연차휴가 미부여 등을 이유로 신고한 것이다.
또 퇴직 이후 14일 내에 임금, 보상금 등 금품을 모두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어겼다고 신고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A는 "근로관계를 계속 할거냐"고 두차례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B는 대답하지 않았다.
A는 꼼짝없이 임금체불 사업주로 낙인찍혔고, 결국 검찰에 기소됐다. 주요 쟁점이자 관건은 A가 B를 '해고' 했는지 여부가 됐다.
하지만 법원은 해고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B의 행동이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고용청을 찾은 게 이상하다고 봤다.
법원은 "부당해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계속 근로 의사표시를 한 바 없고 근로관계 종료에 따른 보상 문제만을 주로 문제 삼았다"며 "B는 2021년 12월 고용노동청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해고의 효력을 다툰 바 없다"고 지적했다. 해고 여부 보다는 돈에 관심이 더 컸다는 지적이다.
이어 "되레 A가 두차례 무단결근 고지 및 근로관계 지속 의사를 확인하는 내용증명 우편을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답변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A의 행동을 봐도 해고의 의사까지는 없었다고 봤다. 법원은 "A도 당시 예고 없이 해고하는 것이 적법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당시 B에게 ‘집에 가라’는 취지로 말한 것은 언쟁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이뤄진 질책성 발언이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려는 확정적 해고의 의사표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사직이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종료라고 판단해 해고예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부분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A는 '근로계약서 미작성죄'와 '사직 이후 14일 이내 퇴직금 등 금품 청산' 의무를 위반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받게 돼 결국 3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돌아온 직원에게 "왜 아직 여기있어" 재차 말했다면 "해고"
이처럼 실무에서는 근로자의 행동이 사직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종종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 명확한 사직일도 제대로 정해놓지 않으면, 앞서 A처럼 '14일 이내 금품 지급 의무' 위반죄도 걸리게 될 수 있다. 우리 법원은 사직 여부를 이메일, 카카오톡 등 대화 내용 등 정황은 물론 해고가 부당하다고 이의제기를 했는지, 무단으로 출근 거부를 한 것은 아닌지 등 종합적인 정황을 통해 파악한다.
대법원도 "의사표시 해석은 당사자의 내심이 아니라 외부로 표시된 행위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본인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객관적인 행동을 해석에서 판단한다는 의미다.
이런 법원의 판단 기준이 드러난 사례로는 제빵업체 부당해고 사건이 있다(대법원 2021두36462). 제빵업체 사장이 직원에게 "거짓말을 하면 같이 일을 못한다"고 질책하자 직원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반발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다음 은근슬쩍 직원이 제빵실에서 계속 근무하자 사장이 "여기서 왜 일을 하고 있냐"며 나가라고 했고, 다음날부터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케이스다.
부당해고가 문제된 이 사건에서 법원은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직원이 반발했지만 다시 제빵실로 가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앞서 말한 '그만두면 되지 않냐'는 의사표시는 진정한 사직의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해고와 사직은 법률적인 효과가 완전히 다르다"며 "사직의 의사를 표시했을 때 사직일자, 퇴직금등 금품청산 관계, 4대보험 관계 등을 신속히 정리하는 방법으로 사직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