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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만으로도 위협감 최고조…인천공항 노리는 中 면세그룹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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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청사 서관 1층 대강당이 일순 술렁였다. 10년짜리 공항 면세점 입찰(다음 달 28일 사업제안서 제출 마감) 설명회에 중국면세그룹(CDFG)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뜻밖의 노크’였다. 공사 관계자는 “CDFG가 설명회에 온 건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전혀 예상을 못 한 터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설명회에 참석만 했을 뿐인데도 CDFG는 등장만으로 국내 트래블 유통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업계뿐만 아니라 최종 인가 권한을 갖고 있는 관세 당국도 곤란한 처지에 맞닥뜨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내수만으로 세계 1위 면세점 ‘타이틀’을 거머쥔 CDFG가 한국을 1호 해외 거점으로 삼으려 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등장만으로도 위협감 최고조
3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CDFG는 설명회에 인천공항공사 출신 A씨를 대동했다. 6년 여 전에 공항 상업개발 및 운영·관리 담당으로 면세점 입찰을 주관했던 인물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면세사업자들 사이에선 “CDFG가 A씨 외에 인천공항공사 부사장 출신 B씨까지 영입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심지어 B씨가 남대문에 CDFG의 진출을 돕기 위한 사무실을 냈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설명회 직후 A씨의 역할을 알아보니 자신은 통역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일회성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단순 ‘알바’라는 설명인데 업계에선 컨설팅(자문) 역할을 맡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다만, B씨 영입설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국내 사업자들이 CDFG의 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입찰에 써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 대형 면세점 관계자는 “국내 사업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많게는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며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CDFG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DFG가 해외 진출에 첫발을 뗐다는 점도 한국 면세 산업에 ‘적신호’로 해석된다. 한국은 전 세계 면세 시장 1위다. 2019년 기준 글로벌 점유율이 25.6%에 달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홍콩이 석권했던 시장을 롯데, 신라 등 국내 사업자들이 고군분투하면서 2010년께부터 빼앗은 것”이라며 “자칫하면 한국의 1등 지위가 권불십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2019년 기준으로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액은 178억달러에 달한다. 같은 해 휴대폰 등 무선통신기기 수출액은 141억 달러였다. 비록 가정이긴 하지만, CDFG가 인천공항을 필두로 해외에 자리를 잡고 유커의 지갑을 장악할 경우 국내 면세 산업이 입을 타격은 가늠키 어렵다. 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면세점의 직간접 고용 인원은 3만5000여 명에 달했다.
중국 ‘면세점 굴기’ 해외로 확장되나
중국에서 면세 산업은 ‘홍색 귀족’을 위한 황금알이나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각 지방의 국영공항공사는 공산당 고위 간부와 그의 가족들에게 면세 사업권을 나눠주면서 막대한 이득을 안겨줬다. 2011년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는 ‘트래블 유통’으로도 불리는 면세업을 산업으로써 적극 육성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유커의 지갑을 ‘내수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남쪽의 휴양지인 하이난을 국가면세지구를 지정하고, 하이난을 방문한 중국인 1인당 면세품 구매 한도를 작년 말 기준으로 10만위안(약 1720만원)으로 올렸다. 면세 한도까지 돈을 다 못 썼으면 집에 돌아가 6개월 이내에 온라인몰로 면세 쇼핑이 가능하게 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폈다.

CDFG는 이 같은 지원책의 최대 수혜자다. 현재 건립 중인 하이쿠 국제면세점 쇼핑몰을 비롯해 하이난에서만 5곳의 시내면세점을 확보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지난해 세계 1위 면세 사업자로 등극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1월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텐진, 충칭 등 주요 도시에 시내면세점 신설을 장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유커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라며 “남쪽은 하이난 특구로 대응할 수 있지만 베이징만 해도 하이난보다 인천공항이 훨씬 거리가 가까워 한국으로 유커가 쏠릴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커의 파워는 명품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짐작할 수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추정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의 지출은 2019년에 2550억 달러에 달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3% 수준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한국 면세 산업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던 건 중국의 ‘큰손’ 덕분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중국의 상위 1%들은 짝퉁 천국인 중국 면세점보다는 한국 등 해외 면세점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입찰 흥행엔 좋은데…작정하고 떨어뜨리긴 어려워”, 관세당국 '노심초사'
CDFG가 인천공항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복합적인 배경에서다. 애국 소비를 강조하는 중국인들을 흡수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명품 브랜드와의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CDFG가 실제 인천공항 면세 사업자로 선정된다면 LVMH, 케어링 등 글로벌 명품 그룹들도 그동안 짝퉁 이슈 때문에 꺼렸던 데서 벗어나 CDFG에 상품을 더 많이 공급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CDFG는 대형 사업자들끼리 경쟁하는 5개 매장 중 화장품을 주로 취급하는 2개 구역의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3개 구역은 패션 중심 매장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기존 관행대로라면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4개 사 중 한 곳이 화장품과 패션 구역 하나씩을 맡고, 나머지 3개 사가 잔여 3개 구역을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될 것”이라며 “CDFG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함으로써 저마다 셈법이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공사와 관세청 등 관계 당국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반중 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하지만 공사 측의 속내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CDFG의 참전 가능성을 흥행 요소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공사 관계자는 “DFS 등 유럽계 면세 사업자 사이에선 한국은 외국사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관세 당국의 규제가 강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싱가포르 창이공항처럼 세계적인 관문 공항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CDFG가 제안서를 제출한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공은 관세청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 평가에서 가격이 40%를 차지하고 나머지 60%는 제안서 심사”라며 “제안서에선 면세점 운영 능력과 브랜드 구성력 등의 객관적인 ‘실력’만 평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공사는 구역별로 2곳을 선정해 관세청에 올리게 돼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관세청의 평가 항목엔 지역 사회와 기업에 대한 기여도 등이 포함돼 있다”며 “CDFG가 관세청의 관문을 뚫고 최종 낙점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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