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관 시험·인증기관이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인 수수료 수입이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며 2년 연속 5000억원대를 돌파했다. 7년간 누적 수입은 3조원을 넘어섰다. 경기 침체와 원가 상승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 유관 기관들이 과도한 '수수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등 중소기업이 이용하는 정부 유관 시험·인증기관 4곳의 지난해 수수료 수입은 5371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4개 기관의 수수료 수입은 2016년 3670억원에서 2018년 4133억원, 2021년 5229억원 등으로 매년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최근 7년간 누적 수입은 3조1727억원에 달한다. 4개 기관 중 수수료 수입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KCL이다. 2016년 934억원에서 2022년 1630억원으로 6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다만 4곳의 지난해 수수료 수입 증가율은 평균 2.7%로 최근 7년 새 가장 낮았다. 증가율이 둔화한 것은 경기 위축에 따른 시험·인증 수요 감소와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기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수수료수입 증가율이 높았던 해는 2020년(9.3%)이었다.
벌이가 늘면서 인증기관들은 인력과 소유 부동산을 가파르게 늘리고 있다. 작년 기준 4개 기관의 소유 부동산(취득원가 기준) 규모는 6613억원, 인력은 3887명에 달한다. 소유 부동산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KCL로 7년간 2.2배로 늘었다. 인력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KTL로 42.8% 급증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방 기업을 위한 시험시설을 많이 짓다 보니 보유 부동산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시험·인증기관의 비대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중소기업들이 해외에 비해 너무 많은 인증을 요구받고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옴부즈만과 중소기업계는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시대에 뒤떨어진 시험·인증을 통폐합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수수료 감면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기업들이 체감할 획기적인 개선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품종 소량판매가 많은 중소기업들은 제품 사양을 조금만 바꿀때마다 막대한 시험·인증료를 부담해야하고 소요 기간도 오래 걸려 신제품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인증 관련 개선이 시급한 정부 정책으로 ‘인증 비용 부담’(64.0%)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기업이 인증을 취득하는 데 평균 6.2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소요기간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은 71.0%에 달했다. 한 중소제조업체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획기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인증기관은 고압적인 자세로 중소기업인을 대하며 막강한 '인증 권력'을 휘두른다"라며 "(인증기관으로부터) 한 번 눈 밖에 나면 심사가 한없이 지연되는 등 곤란을 겪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까다로운 시험·인증이 많아질수록 관련 컨설팅 수요로 '전관'이 이득을 보는 잘못된 생태계가 조성된 탓에 기업들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생활용품업체 대표는 지난해 정부 인증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억울하게 고발당해 수개월간 경찰조사를 받다가 최근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시험·인증기관 퇴직 임원으로부터 “동료 컨설팅사를 통해 인증을 준비하면 결과가 빨리 나올 수 있다”는 제안을 거절한 뒤 발생한 일이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해외에선 쓰지도 못하는 국내 인증을 발급받느라 많은 시간과 돈이 낭비되고 있다”며 “시험과 인증이 기관들의 ‘갑질 도구’가 됐고 정부 기관 퇴직자의 ‘밥벌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중소기업인들은 인증제도가 무분별한 수입품의 범람을 막는 일종의 '무역장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시험·인증시장규모는 14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국내 법정 인증 제도는 산업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24개 부처에서 222개를 운영하고 있다. 한 인증기관 관계자는 "기관 수입에서 수수료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조직이 커질수록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수료도 낮출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는 “많은 화학물질 관련 규제와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공무원들은 사고가 터질때마다 높은 규제의 장벽을 치고 그 댓가로 많은 시험·인증을 요구한다"며 “시험·인증 수수료도 일종의 기업들이 부담해야할 ‘준조세’성격인데, 인증기관이 사업논리에 따라 계속 확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자근 의원은 "최근 전기세, 난방비 등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증기관마저 '잇속 챙기기'에만 골몰해선 경제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며 "중소기업의 부담완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