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산가들의 이민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다함께 잘 살자)' 기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이 중국 정부의 방역 규제 완화로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탈(脫)중국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 유출로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블룸버그는 복수의 이민 컨설턴트를 인용해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후 많은 중국 부유층이 부동산 매물을 찾거나 이민 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해외 여행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들의 해외 여행 제한이 풀리면서 부유층 엑소더스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부유층은 지난해 10월 3연임을 공식화한 시 주석의 공동부유 구호에 강한 반발심을 가진 상태였다. 제로 코로나 규제로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중국에 발이 묶였지만 이제는 장애물이 사라졌다.
작년부터 중국 부유층 1만800명이 이민을 택하며 탈중국 행렬이 재개됐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코로나 사태 전 중국 부유층의 이탈로 연간 약 1500억달러(약 185조원)의 자본 유출이 발생했다"면서 "올해는 해외 이민 수요 등으로 이 액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캐나다 이민 법률 회사인 소비로브스 측은 "지난 6개월간 중국 정부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의 상담 예약이 급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중국 고객들은 가능한 빨리 이민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이민 수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중국이 해외 입국자 격리 조치를 전격 폐지한다며 '방역 국경'을 개방한 지난달 26일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에서 '이민' 검색량은 전날 보다 약 5배 증가한 1억1070만명으로 집계됐다.
해외 부동산 매물을 찾는 문의도 급증했다. 아시아 고객의 해외 부동산 매입을 중개하는 부동산 업체 쥬와이아이큐아이는 중국 본토 바이어의 해외 부동산 관련 문의가 2021년 26%, 2022년 11% 감소했지만 올해 현재까지 55% 증가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엄격한 자본 통제를 가하는 나라다. 중국인들은 매년 5만 달러 상당의 위안화만 외화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여행 재개만으로 자본 유출이 급증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해외 여행과 이민으로 달러 수요가 늘면서 위안화 가치에 하방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즈우 홍콩대 금융학과 교수는 "올해 수백만 명의 중국인이 해외 여행을 한다면 중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이 수백억달러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 규제로 지난 3년간 발생하지 않았던 관광 유출액이 올해 1000~2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면서 "자본 유출은 위안화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개입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