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용은 제품 가격에 전가된다. 국내 법규상 해외에서 인천 아이허브 물류센터에 들어온 상품은 해외 소비자에게만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치열한 글로벌 GDC 유치 경쟁
25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 부산항 광양항 등 자유무역지역에만 설립할 수 있는 글로벌권역물류센터(GDC)에선 국내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할 수 없다. GDC는 글로벌 전자상거래(e커머스) 기업의 제품을 반입·보관하고, 품목별로 분류·재포장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물류센터다.보세구역에선 상품을 임시 보관하는 것만 가능한데, GDC는 상품 재포장도 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글로벌 e커머스 기업들은 각 대륙의 주요 거점에 GDC를 짓고 이를 전진기지 삼아 인접 국가에 빠르게 상품을 보낸다.
GDC가 없으면 개별 주문 단위로 항공 배송을 해야 하지만, GDC를 지으면 배를 이용해 컨테이너로 상품을 들여와 보관·판매를 병행하는 게 가능해진다. 직구의 약점으로 꼽히는 복잡한 상품 교환·반품 절차도 간소화할 수 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이런 이점을 노리고 세계 각지에 GDC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아마존은 터키에 1억달러(약 1240억원)를 투입해 물류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3월 밝혔다. 알리바바그룹 물류회사인 차이냐오는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2021년 벨기에 리에주공항에 물류센터를 열었다.
각국 정부의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물류센터 유치 시 직접적인 고용 창출 효과는 물론 인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후방 효과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 완화 시늉만”
그런데도 한국은 국내에 지은 GDC에서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할 수 없는 ‘족쇄’를 자초해 아시아 물류 허브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e커머스 기업 입장에서 아시아권 물류센터를 세우고도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한 곳인 한국에 배송하지 못하면 엄청난 비효율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국내 물류업체들은 GDC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GDC에 반입된 상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배송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지속해서 요청 중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소극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10월 ‘전자상거래 관련 국민 편의 및 수출 제고 방안’을 내놓으면서 동북아시아 전자상거래 물류허브 구축을 위해 GDC에 반입된 물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달 내놓은 관련 고시 개정안에서는 ‘국내 사업자’에게만 배송을 허용했다. 한 관세사는 “직구는 주로 개인이 상품을 구매하는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인데 국내 사업자에게만 배송을 허용한다는 건 규제를 푸는 시늉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트렌드 역행 안 돼”
관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은 GDC를 통해 직구 제품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면 국민 건강과 안전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어 직구로 구입한 주류는 원재료와 원산지, 경고 문구 등을 소비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표시해야 하는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유통이 가능하다. 청소년도 성인 인증 없이 술을 직구해 배송받을 수 있다.GDC에 들어온 상품을 국내 소비자에게 배송할 수 있도록 완전히 풀어주면 기존 유통 질서가 무너질 것이란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상품을 정식 수입해 판매하는 국내 기업으로부터 물건을 살 때와 직구를 할 때 배송시간, 반품 조건 등에서 차이가 거의 없어져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물류업체들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해선 초(超)국경 택배 활성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를 고집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정식 통관 절차를 거친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사는 대신 사후서비스(AS)를 보장받을지, 저렴한 가격에 직구하는 대신 AS를 포기할지는 소비자가 선택할 문제”라며 “GDC를 통해 식품을 관리하면 일반 직구 제품보다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