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새 아파트 입주가 잇따르면서 전월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확산하고 있다. 도심의 방 3칸과 화장실 2개인 신축 아파트 전셋값이 서울 화곡동 원룸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세입자를 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2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대구에선 올해 33개 단지에서 3만4984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기존 최대 물량을 기록했던 2008년(3만4688가구)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앞으로 역전세난은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더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전·월세값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오는 3월 입주할 예정인 1418가구 규모의 '서대구KTX영무예다음' 전용면적 57㎡ 월세 시세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 50만원, 전세는 보증금 1억1000만원까지 급락했다. 도심 재개발 단지라 주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방 세 칸과 거실에 화장실도 두 개가 있는 아파트다. 평리푸르지오 등 주변 같은 크기 아파트가 작년 11월 전세금 2억3000만원에 임차된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인근 T공인 관계자는 "전·월세값이 더이상 내리기도 어려운 수준까지 내려갔는데도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며 "경기가 나빠 세입자가 이사할 비용조차 없는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드물다"고 전했다. 매매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집주인이 돈을 줄테니 분양권을 받아가라는 형식의 마이너스 프리미엄 7000만원(전용 84㎡) 매물도 나와 있다. 역전·월세난은 대구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작년 3분기말 1만5650건이었던 대구 전·월세 매물은 이날까지 1만9033건이 쌓이며 21.6% 급증했다. 금리가 올라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물량이 쏟아진 탓이다.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인근에 들어선 935가구 규모 '동대구해모로스퀘어' 전용 59㎡는 오는 4월 입주를 앞두고 월 임대료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7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전세는 보증금 1억5000만원 수준이다. 공원을 끼고 있어 주거환경이 좋은 단지로 평가받는다.
다음달 입주하는 중구 남산동의 재개발단지(총 947가구)인 '청라힐스자이' 역시 전용 59㎡의 전셋값이 2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입주한 남산자이하늘채 등 주변 전세 실거래 시세는 2억8000만원 수준이다. 이 단지는 지하철1호선 반고개역 역세권에 자리해 2020년 분양 당시 평균 청약경쟁률 141대1을 기록했다. 부적격 당첨자 물량 공급 때도 '프리미엄 1억원이 보장된다'며 수요자가 몰렸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1억원에 달한다.
하반기엔 미분양 단지 준공 잇따라
분양 성적이 좋은 단지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하반기부터는 미분양 단지들이 잇따라 입주를 시작한다. 분양이 끝난 단지에서 세입자를 못 구하면 수분양자(계약자)가 잔금 마련에 나서야 하는 반면 미분양 단지는 시행사와 건설사가 직격탄을 맞는다. 미분양 단지의 준공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만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행사가 PF상환에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 건설사들이 물량을 떠안아야 한다.동구에서 오는 10월 입주 예정인 '용계역푸르지오아르베츠'(1313가구)는 2021년 분양당시 1순위 청약 경쟁률이 0.62대1을 기록한 데 이어 현재까지도 미분양 단지로 집계돼 있다. 하지만 대우건설 요청에 의해 물량은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외곽 택지개발지구에 자리잡고 있어 임차인을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수성구 파동에서 12월 입주하는 '수성해모로하이엔'(576가구)도 청약 미달 이후 현재까지 미분양 상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