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과 태영건설 등 건설사들이 사모 시장에서 잇따라 자금을 조달했다. 시공한 아파트가 일부 안 팔렸지만 적자가 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모시장에서 고리로 자금을 끌어온 것은 '보증' 때문이다. 예전부터 "빚 보증은 가족 간에도 서는 게 아니다", "보증서달라는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연을 끊어라"는 등의 격언이 통용될 정도로 보증은 위험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부동산 호황 속에서 건설사들이 위험성을 간과한 게 패착이란 해석이 나온다.
건물 땅 담보 잡히고도 연 15%로 돈 빌려
롯데건설은 지난 9일 자신들이 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 채권 1조5000억원 어치를 메리츠금융금융이 조성한 사모펀드에 팔았다. 쉽게 말하면 메리츠에게 채권을 넘기고 1년 2개월 만기로 돈을 빌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자율이 무려 연 12%에 달하고, 주선수수료까지 더하면 실질 금리는 연 15%에 육박한다는 소문이 업계에서 나돈다. 사모펀드에 롯데정밀화학과 롯데물산 등 계열사가 6000억원을 후순위로 투입하고 부동산과 신탁수익권 등을 담보로 맡긴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이자율이다. 메리츠증권과 화재 등은 9000억원을 선순위로 넣었다.태영건설 역시 메리츠에게 같은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미국 사모펀드 KKR에게 4000억원을 빌렸다. 이자율은 연 13% 정도다. 지주사가 4년 만기 사모사채를 발행하고 KKR이 인수하는 방식이다. 폐기물 처리업체를 공동 경영하는 등 KKR과 협력관계를 이어온 덕분이다. 부동산 및 투자주식 일부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
건설사들이 불리함을 감수하고 급전을 마련한 것은 보증을 선 PF채권(유동화물)이 잇따라 자신에게 넘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 유동성이 말라서다. 롯데건설의 총 PF보증 규모(우발채무·작년 11월 기준)는 6조9000억원가량인데 작년 4분기에 상당 부분이 현실화되며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유상증자를 하고 계열사에서 돈을 빌려 현금을 확보했다.
부동산 호황, 과소평가된 보증의 위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PF 보증으로 많은 건설사들이 부도를 맞았다. 이후 건설사들은 시행사가 땅 살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서는 전형적인 PF보증은 줄이는 대신 책임준공, 유동화자금 보충약정 등으로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점차 주택시장 열기가 뜨거워지자 보증의 무서움은 잊혀졌다.롯데건설은 자금보충약정 형태의 보증을 2019년 1조2711억원에서 작년 11월 5조5403억원으로 급속하게 늘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파트 분양만 하면 완판됐기 때문에 설마 보증 채무가 넘어올 것이란 우려는 덜했다.
태영건설은 PF빚보증(지급보증)를 2018년 1조520억원에서 작년 9월 3조2385억원으로 불렸다. 분양만 어느 정도 양호하게 되면 적어도 돈을 떼일 염려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분양까지 가기도 전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며 자금보충약정 PF채무가 건설사로 넘어왔다.
앞으로는 다른 건설사의 보증도 시한폭탄이 될 전망이다. 롯데와 태영은 금융시장 경색으로 사업 중간 유동화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분양 등으로 채권 자체가 부실화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잇따라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하고, 일부 사업장은 사업무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행사가 결국 PF 대출을 못갚아 건설사들이 떠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